韓, 2017년의 화두는 ‘파사현정’
잘못 깨고 바른 것 드러내라
진보·보수정부 막론 부정 의미 많아

中, 초기 사회상 적극 반영했으나
근래 들어 ‘대국굴기’에 초점
文정부 적폐청산…기대·우려 교차

 

 

2017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파사현정(破邪顯正)’이 선정됐다. ‘사악하고 그릇된 것을 깨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의미다. 교수신문이 전국 대학교수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34%가 꼽았다.

파사현정은 불교 삼론종(三論宗)의 기본교의로, 이 종단의 가르침을 체계화한 길장(吉藏)의 ‘삼론현의’에 실린 고사성어다.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와 최재목 영남대 동양철학과 교수가 추천했다.

최경봉 교수는 “사견(邪見)과 사도(邪道)가 정법(正法)을 눌렀던 상황에 시민들은 올바름을 구현하고자 촛불을 들었으며, 나라를 바르게 세울 수 있도록 기반이 마련됐다”며 “적폐청산이 제대로 이뤄졌으면 한다”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최재목 교수 또한 “최근의 적폐청산 움직임이 제대로 이뤄져 ‘파사(破邪)’에만 머물지 말고 ‘현정(顯正)’으로까지 나아갔으면 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를 선정해 발표한 것은 창간 10주년을 맞은 지난 2001년부터였다. 첫 작품은 ‘오리무중(五里霧中)’. 깊은 안개 속에 들어서게 되면 동서남북도 가리지 못하고 길을 찾기 힘들다는 뜻으로, 당시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상황을 대변했다.

2002년(김대중 정부)엔 헤어졌다 모이고 다시 헤어지는 ‘이합집산(離合集散)’,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에는 옳고 그름을 떠나 한 무리에 속한 사람들이 다른 무리의 사람을 무조건 배격하는 ‘당동벌이(黨同伐異)’, 2008년(이명박 정부)엔 병이나 잘못이 있는데도 귀를 막는다는 의미의 ‘호질기의(護疾忌醫)’를 선택했다. 물론 현실을 반영한 결과라 하지만 긍정보다 부정적인 측면이 도드라져 보인다.

그것은 세월을 뛰어넘어도 마찬가지다. 2016년의 사자성어는 백성은 물, 임금은 배라는 ‘군주민수(君舟民水)’였다. 강물의 힘은 배를 뜨게 하지만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는 실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이어졌다.

2014년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는 ‘지록위마(指鹿爲馬)’, 다음해인 2015년 나라 상황이 마치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온통 어지럽다는 뜻인 ‘혼용무도(昏庸無道)’에 담긴 의미를 조금이라도 알고 반성했더라면 오늘과 같은 ‘박근혜의 몰락과 비극’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에 ‘사자성어’가 있다면 중국에는 ‘올해의 한자(年度漢字)’가 있다. 중국은 지난 2006년부터 현재 상용되는 약 8만5000자의 한자 중 딱 한 글자를 골라 연말연시의 국가적 상징으로 활용했다. 우리와는 달리 정부가 관여하는데 중국 교육부 국어연구소와 대표적인 인터넷 포털인 신랑망(新郞網) 등이 연합, 매해 연말에 네티즌 투표로 선정하고 있다.

정부의 관여에도 불구하고 초기엔 사회상을 그대로 반영했다. 2006년 첫해 ‘볶는다’는 뜻의 초(炒)가 선정된 것은 대표적이다. 당시 중국인들은 회사에서 달달 볶이다가 쫓겨나는 월급쟁이들을 ‘프라이팬 위 오징어’, 즉 초우어 신세라고 자조했다.

2007년엔 물가 상승을 뜻하는 ‘넘칠 창(漲)’이 뽑혔다. 또 2009년엔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공권력이나 조직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는 수동적 사회시스템을 풍자한 ‘피(被)’ 자가 선정됐다.

그러나 부정적이던 ‘올해의 한자’는 2012년부터 긍정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시진핑 정부가 ‘중국의 꿈(中國夢)’을 천명한 이후 ‘몽(夢)’ 자가 뽑힌 것이다. 이듬해인 2013년 ‘나아갈 진(進)’이 선정되더니, 2014년엔 법에 따라 부정부패를 색출해 처벌하겠다는 ‘법(法)’이, 2015년은 반부패 사정바람을 반영해 ‘청렴할 염(廉)’이 뽑혔다. 그리고 지난해 과거의 기반 위에 정책개혁과 인민의 희망을 더해간다는 의미가 담긴 ‘규범 규(規)’를 선정하기에 이르렀다. ‘중국몽’과 ‘나아갈 진’에서 보듯이 중국의 올해의 한자는 옛 중화민족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하는 굴기(崛起)의 몸부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 교수들이 2017년 사자성어로 ‘파사현정’을 선택한 것은, 새로운 세상과 희망을 염원하고 있음이다. 하지만 2위로 뽑힌 ‘해현경장(解弦更張)’ 속엔 이중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국민의 폭넓은 지지 속 출범한 새 정부가 비정상의 나라를 정상으로 만들어달라는 바람이다. 또 다른 하나는 현재 진행 중인 ‘적폐청산’이 자칫 거문고의 줄만 바꾸는데 그치는, ‘허장성세(虛張聲勢)의 개혁’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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