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국제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이보영

요즘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대세인가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세상은 발전하여 살기 좋아지는 것 같았는데 인간의 몸은 더 많은 희귀병에 시달리고 땅은 병든다. 그래서 먹거리를 비롯한 많은 살거리들이 기초로 돌아간다. 계속해서 도시로 향하던 발길이 이제는 시골로 향하고 패스트푸드에 열광하던 손길은 땅에서 직접 수확한 것을 찾는다. 쉽게 키워 많이 벌겠다고 쓰던 방법에서 조금 키우더라도 사람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많은 것들이 본질로 돌아간다.

이런 현상은 교육에서도 마찬가지다. 교권은 땅에 떨어졌다고 말하고, 교실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사고들이 일어난다. 아이들이 물질적으로는 풍족함을 누리게 되었지만, 정서적으로는 메말라 점점 난폭해 지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시점에서 자녀교육 역시 본질을 생각해야 한다. 부모들에게 아이가 커서 무엇이 되었으면 좋겠냐고 물으면 대다수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했으면 좋겠다고 대답한다. 본질을 잊고‘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라는 말은 아이들을 혼란과 멸망의 길로 인도할 뿐이다.

18세기~19세기를 살다간 고아의 아버지 페스탈로찌는 부모가 자녀를 교육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아이를 어떤 목적으로 양육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뚜렷한 견해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자녀는 ‘여호와의 기업(시편127편3절)’이다. 기업은 ‘기증자의 뜻에 의한 선물’을 말한다. 기증자는 하나님이시므로 부모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주의 교훈과 훈계(에베소서 6장4절)로 양육해야 한다. 17세기 교육학자 코메니우스 목사는 유아기의 부모교육을 강조한 ‘유아학교’라는 책에서 ‘하나님을 믿는 마음을 기르지 않는 교육은 이익보다는 해(害)가 더 많다’고 했다.

점점 더 편리하고 좋은 환경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 더 나은 세상을 꿈꿀 수 있는 방법은 내 뜻대로 되는 세상이 아닌 처음 창조된 질서대로 운영되는 세상 일 것이다. 아이가 하자는 대로 따라가면 아이는 길을 막는 원시림 나무처럼 될 것이며, 부모의 욕심으로 양육한다면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자랄 것이다. 그러나 창조자의 방법대로 양육한다면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받는 사람(누가복음 2장52절)’으로 자라게 될 것이다. 지혜의 왕 솔로몬은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언 22장6절)’고 말한다. 마땅히 행할 길은 부모가 눈앞의 자녀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높은 원리를 볼 수 있을 때 가능해 진다. 잠시 멈추어 부모의 욕심과 편견으로 자녀를 양육하는지 스스로를 돌이켜보아야 한다.

당장 보이는 수확은 적더라도 땅을 살리고 사람의 마음을 살리는 길은 본질로 돌아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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