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반 감동 더해준 윗세오름 컵라면
노조파업·매점폐쇄 이젠 ‘추억’
모두 ‘패자’ 실직·국립공원 고객 피해

‘감성’ 아닌 ‘감정 행정’의 결과 귀착
제주관광 ‘스토리텔링’도 사라져
반드시 ‘부활’ 다시 감동 줄 수 있어야

 

한라산 등반은 언제나 감동이다. 제주도민이나 관광객 모두에게 그러하다. 도민들에겐 지난한 삶을 이겨온 제주인을 닮은 산의 품에 안긴다는 건 행복이다. 관광객들에겐 한반도 북단의 백두산과 함께 대한민국의 영산(靈山)인 국토 최남단의 한라산을 오른다는 희열이 있다.

여기에 감동을 더해줬던 게 ‘한라산 컵라면’이다. 3~4시간을 헉헉거리며 윗세오름에 올라 휴게소에서 판매하는 컵라면을 먹는 즐거움은 한라산 등반의 또 다른 맛이었다. 해발 1700 고지에서, 코앞의 1950m 한라산 정상과 함께 하는 컵라면은 더 이상 라면이 아니었다. 감동이었다.

한라산 컵라면은 계절 구분 없이 인기였다. 뜨거운 국물이 그리운 겨울은 물론 여름에도 좋았다. 윗세오름까지 올라오며 달아올랐던 몸과 함께 땀이 식으며 등줄기를 서늘하게 할 무렵 ‘호호’ 불어대며 마시는 라면국물의 맛은 일품이었다. ‘전설의 맛’이라고까지 했다. 그야말로 컵라면 하나의 행복이었다. 1년에 30만개가 팔렸다니 1500원짜리 컵라면으로 30만명이 행복했다.

그 컵라면이 사라지고 말았다. 한라산국립공원에서 매점을 운영해 오던 후생복지회가 해산됐기 때문이다. 한라산국립공원 후생복지회는 지난 10일 해산을 결정했다. 한라산국립공원 직원들을 당연직 회원으로 한 후생복지회는 1990년 구성, 판매원들을 고용하고 윗세오름 등 3곳에서 컵라면과 물·등산용품을 판매하는 휴게소를 운영해 왔다.

그런데 판매원 10명으로 구성된 노조가 지난해 10월말 파업에 돌입하면서 사달이 시작됐다. 노조는 열악한 보수와 복지 개선을 위해 제주특별자치도에서 공무직으로 채용을 요구했다. 노조는 ‘제주도 소속 근로자로 인정해 달라’는 소송도 제기한 상태다.

그러나 제주도는 ‘근로자들이 국립공원의 관리를 받기 때문에 제주도와 무관하다’는 입장이고. 한라산국립공원 측은 ‘공무직으로 채용하면 행정기관이 영리목적 장사를 하는 셈이어서 어렵다’고 난색을 표하면서 대립이 장기화됐다. 결국 한라산국립공원 측은 파업으로 판매가 부진, 적자가 발생하자 경영악화 등을 이유로 해산을 결정하고 말았다.

서로 양보 없이 버티면서 최악의 결과를 맞은 것이다. 비극적인 ‘치킨게임(chicken game)’을 보는 듯하다. 외견상으론 양측 모두 승자다. 2명이 도로 맞은편에서 자동차로 서로를 향해 돌진하는 ‘무식한’ 게임에서 겁쟁이(chicken)이 되지 않기 위해 핸들도 꺾지 말고 브레이크도 밟지 말고 달려야 이겼던 게임처럼 양측 모두 양보 없이 달렸다.

그래서 둘 다 승자이나 둘 다 승자가 되지 못했다. 치킨게임에서 두 사람 모두 지지 않으려 끝까지 핸들을 꺾지 않아 정면충돌로 죽는 것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양측 모두 패자인 셈이다. 대립으로 잃은 게 너무나 크다. 파업을 벌였던 근로자들은 ‘직장’을 잃었다. 만족할 만한 근로조건을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정년과 급여가 보장됐던 일터였다.

한라산국립공원사무소 측도 노조 요구에 굴하지 않았으니 이겼다고 여길지도 모르나 비용이 과도하다. 한라산국립공원 ‘고객’ 30만명에게 피해를 끼치고 있다. 노조의 요구는 물론 국립공원의 해산 결정의 당위성과 정당성 여부를 차치하고 결과는 ‘감성 행정’이 아니라 ‘감정 행정’으로 국립공원 이용자들의 행복과 감동을 빼앗아 버린 셈이다.

제주관광에 또 하나의 ‘스토리’도 없애버렸다. 눈으로만 보는 피상적 관광에서 마음으로도 느끼는 감성적 관광 시대의 키워드는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다.

스토리텔링은 거창한 게 아니다. 소소하지만 기억에 남고 감동이 있으면 된다. 눈을 들어보면 손닿을 듯 한라산 정상이 가까이 있고, 뒤돌아보면 한라산 능선을 따라 펼쳐지는 제주도의 풍광과 그 너머 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먹는 컵라면만으로도 ‘스토리’는 충분하다.

이에 ‘한라산 컵라면의 부활’을 촉구한다. 물론 당장은 어려울 수도 있다. 소송 등 일련의 ‘대립’ 과정이 종료된 뒤여야 할 것 같다. 그때가 되면 라면국물 등으로 인한 환경훼손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방안도 함께 마련돼야 할 것이다.

“니들이 게 맛을 알아?”라는 광고 카피가 생각난다. 따라서 한마디 던져본다. “니들이 한라산 컵라면의 감동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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