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족 갈등 1994년 대학살로 번져
100일간 무려 80만명 희생
통 큰 ‘용서·화해’로 새 희망 찾아

제주4·3 70주년, ‘相生’ 기치 불구
일부 인사 이념논쟁 부추겨
‘상처·갈등 치유’에 천주교계 앞장

 

 

 

이름만 들어도 ‘대학살’과 ‘인종청소’가 연상되는 르완다. 아프리카 중동부 내륙에 위치한 이 나라는 1962년 벨기에로부터 독립을 일궈냈고, 소수계 투치족이 정국 주도권을 잡았다. 그러나 1973년 다수족인 후투족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며 내전(內戰)으로 이어진다.

1994년 4월 7일, 다수를 차지하는 후투족이 반대파 투치족과 이들을 옹호하는 온건 후투족을 무참히 살해하기 시작했다. 학살(虐殺)은 100일간 지속됐고 최소 80만명(최대 97만명)이 숨지는 대참극이 벌어졌다. 인구의 약 10%가 정쟁(政爭)에 희생당한 것이다. 인위적으로 종족을 나누고 이들을 차별해 온 식민지배의 산물이었다.

투치족 등을 죽인 것은 군인만이 아니었다. 이웃과 친구 등 평소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이 대거 학살에 동참했다. 그 이면엔 종족 간의 갈등을 부추긴 정치권 등 구태(舊態) 세력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 사건은 르완다 전체에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았다.

그 후 10여년 뒤, 폴 카가메가 르완다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투치족 출신으로 학살을 직접 경험했고, 후투족에 맞서 게릴라를 조직해 항전에 나섰던 인물이다. 하지만 폴 카가메 대통령이 선택한 것은 ‘처절한 복수’가 아니라 ‘용서와 화해’였다. 관용과 용서로 남아공을 하나로 묶은 넬슨 만델라와 꼭 닮은 용단(勇斷)이다.

르완다는 ‘가차차(Gacaca)’에서 그 해법을 찾았다. 가차차는 ‘풀밭’이란 뜻이다. 가해자가 마을 사람들이 둘러앉은 자리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이를 피해자가 받아들여 용서하면 낮은 수준의 형벌을 내리거나 지역사회 봉사 등으로 죗값을 치르게 했다. 예부터 아프리카에 전해져온 분쟁해결 방식으로, 기존의 서구식 사법제도로는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전통 법정’을 부활시킨 것이다.

이 제도를 통해 불구대천의 가해자를 용서한 어떤 이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오랫동안 당신을 저주했어요.. 그러다가 깨달았어요. 내 아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지만, 당신은 여기 있다는 것을. 그리고 당신은 한때 나의 좋은 이웃이었다는 것을. 당신을 용서합니다.”

제주의 4월처럼, 르완다도 매년 4월이면 제노사이드(genocide·집단학살)의 희생자를 기리며 추모 기간에 들어간다. 올해는 ‘집단학살’ 24주기다. 르완다 사람들은 우울함을 벗어던지고 아픈 과거를 극복하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 온 힘을 다하고 있다.

제주4·3사건 70주년을 맞은 2018년 새해, 지역사회는 ‘화해와 상생’ 그리고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 올인 중이다. 그러나 도내 일부 인사들이 “4·3은 공산주의 폭동이다. 이는 김대중 대통령도 인정한 사실”이라고 주장하며 찬물을 끼얹고 있다.

이들은 자칭 ‘애국·안보 인사’들로 “4·3사건의 성격이나 역사적 평가가 보류된 상태에서 4·3특별법을 개정하는 것은 허상의 바탕 위에 탑을 건설하는 것”이라며 특별법 개정을 반대하고 나섰다. 그 속엔 신구범 전 제주도지사도 끼어 있다. 한 마음으로 뭉쳐 지난날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치유해도 모자랄 판에, 지역의 지도자급 인사들이 또다시 이념논쟁을 부추기고 있으니 자탄을 금치 못할 정도다.

이에 대한 반응은 즉각 나왔다. 김대중평화센터는 “ 김 전 대통령의 진심을 왜곡(歪曲)하지 말라”며 “이는 억울하게 희생된 분과 유족들에게 또 다른 아픔을 주는 행위”라고 강하게 반박하는 보도자료를 냈다. 마치 ‘어물전 망신, 꼴뚜기가 시키는’ 꼴이다.

제주4·3은 한국 현대사의 대표적인 비극 중 하나다. 이제 과거의 아픔을 떨쳐버리고 ‘화해(和解)와 상생(相生)’의 미래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은 범도민적 염원이다. 그래야만 제주의 밝은 내일도 기약할 수가 있다.

한국 천주교계가 제주4·3 70주년을 맞아 신학적 반성을 통해 지역공동체의 상처와 갈등을 풀어내고자 특별위원회를 발족시킨 것도 그 일환이다. 4·3과 관련 제주교구 차원이 아니라, 한국 천주교 전체가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제주교구(교구장 강우일 주교)는 “지역사회의 아픔을 공유하고 4·3에 대한 한국 교회 차원의 관심을 이끌어내 인권과 평화, 화해와 용서의 신앙실천을 실현하는 것을 교구 사목(司牧)의 지표로 삼는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아프리카의 르완다는 20여년 전의 ‘핏빛 역사’를 청산하고 미래로 나아가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왜 우리는 ‘70년의 질곡(桎梏)’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채, 자꾸 과거로만 회귀하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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