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아 돈아 말모른 돈아 /  어느 고망에 곱아 시니. /  돈아 돈아 눈먼 돈아 /  어디 가네 ?잠시니.
허기진 눈을 비벼대며 사방팔방을 돌아 봐도 쥐꼬리만한 돈 한푼 꼬락서니조차 볼 수 없었던 보리고개 시절, 우리 어멍 우리 할망들께서 한탄하며 부르던 소리의 한 소절이다. 

60년대까지만 해도 제주민들은 가난을 헌누더기처럼 입고 살았다.  놀부 심보를 가진 자린고비 동네부자도 허리가 휘도록 밭고랑 파며 날새웠다.  흥부처럼 심성 착한 동네 삼촌들도 헌 멍석만한 난전 토갱이조차 없어 남의 밭 반작해서 오망졸망한 식솔들의 주린배를 채우려 아둥바둥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굶주려 배만 볼록한 아이들 눈엔 쉬파리만 왱왱거리고, 죽마타고 동네골목 누비는 아이들도 맹물 한 바가지 꿀꺽꿀꺽 마시고 점심을 대신했었다. 

그 시절의 돈줄은 고작해야 유채와 고구마, 무말랭이 따위였다.  그마저도 입도선매여서 파는 날부터 빈털털이 신세.  가정경제는 닭과 도새기가 큰 몫을 차지했다. 

동네아이들은 지냉이 잡아서 팔아 눈깔 사탕이나 사먹었다.  가난에 질린 누나들은 돈 벌어 오겠다고 육지로 물질 나갔고, 청년들은 밀항선 타고 현해탄 건너 일본으로 갔다. 

국민학교에 낼 사친회비조차 없어서 학교를 포기하거나 자퇴하던 시절이었으니, 돈 구경하기가 가뭄에 콩나듯 힘들 수 밖에 별도리가 있었겠는가.  이 시절을 견디어 낸 삶의 지혜가 바로 ‘조냥정신’이다.

70년대에 접어 들어 감귤농사가 시작되면서 제주민들의 삶도 조금씩 오금을 펴기 시작했다.  ‘대학나무’라고 불리는 감귤나무에 황금돈다발이 주렁주렁 열리기 시작한 것.  흙 바람만 몰아치던 빌레왓들이 감귤밭으로 변해갔다. 

초가집이 스레트집으로 개량되고 베롱한 등잔불이 어둠을 밝히던 대신에 전기가 들어오고, 수돗물이 콸콸 쏟아지고, 좁은 길이 훤히 포장되고, 그야말로 천지개벽(?)이 이루어졌다. 

거기에다 관광개발이 굴뚝없는 산업이라며 육성되기 시작하자, 바람소리 파도소리만 적막하게 흐르던 제주섬에 관광객들이 몰려 오기 시작했다. 

관광객들이 뿌려대는 돈다발이 식당에, 토산품 가계에, 여행사에, 버스회사에, 호텔에 넘쳐났다.

이로 말미암아 한 때는 ‘기생관광’이란 오명을 되집어 쓰는 수모도 겪었다.  거기에다 정부의 산업화 정책으로 나랏돈도 풀려갔다.  이른바 산업화 시대의 도래로 물 쓰듯 돈을 쓰는 풍조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 

 술집이 흥청거렸고 흥청망청 돈 쓰는 맛에 느영나영 모두가 취해갔다.  눈먼 돈이 눈을 부릅뜨고, 말 모른 돈이 큰 소리 치는 사회가 된 것이다.  너도 나도 입만 열면 돈타령에,  가죽만 붙었던 몸둥아리도 배불둑이가 되어 갔다. 

이 시절의 유행가 한가락.  빙글빙글 도는 의자 회전의자에/ 주인이 따로 있나 앉으면 사장이지……  정말 그랬다.  산업화시대는 ‘소비가 미덕(?)’이고 모두가 사장님 행세였다.

‘볕난 날에도 벼락 맞는다’는 속담이 있듯이, ’97년에 IMF라는 청천벼락이 우리사회를 강타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농산물 수입개방이라는 해일이 밀려 왔다.  나라 전체가 아비규환이 되었다.  제주사회도 그 영향권안에 들었음은 불문가지.  감귤이 된서리를 맞기 시작했고, 관광이 휘청거렸다. 

이 시기에 또 신종 요술쟁이가 등장했다.  명함만한 플라스틱 한 장만 박박 긁으면 돈이 쏟아졌다.  이른바 신용카드시대가 열린 것이다.  지갑에 돈 한푼 없어도 카드 한 장만 달랑 있으면 어디가든지 만사형통이었다.  식당에 가도, 술집에 가도, 백화점에 가도 신용카드만 내밀면 환영받는 봉이 되는 것은 불문가지.  그러나 그 환각이 불치병이 될 줄이야. 

‘가랑비에 옷젓는다’는 말처럼, 한 번 두 번 긁어 대는 카드로 인해 어느새 빛더미에 앉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면 신용불량자로 낙인이 찍히는 고통을 면했을 것을.  최근의 신문기자 한 토막이 신용카드시대의 현상을 극명하게 설명해 준다.   … 개인빚이 작년말 483조원으로 파악돼 국민 1인당 빚은 1,000만원을 넘어 섰고, 가구당 빚도 3,156만원에 이르렀다. 

‘박박 긁는 카드소리, 빚쟁이 되는 소리’라는 현대만 속담이 나올 법도 하다.  우리 모두 ‘조냥정신’을 다시한번 되새겨 볼 때이다.

                                                                           시조시인 현 춘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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