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군 병원도 폭격…2013년 후 최악 인명·물적피해
다가올 참사에 경악…알레포 넘어 ‘스레브레니차 학살’까지 언급
시리아 정부는 “테러리스트로부터 동구타 해방 노력” 주장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동쪽 반군 지역인 동(東) 구타가 시리아 정부군의 무차별적인 공습과 포탄 공격을 받으면서 알레포처럼 대재앙을 맞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지역 주민 40만 명이 시리아군의 봉쇄에 갇힌 동구타의 병원 시설 대부분도 대대적인 공습으로 운영이 중단되면서 인도주의적 위기는 한층 더 고조됐다.

21일 알자지라 방송과 BBC, AFP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 19일~20일 기간 시리아군은 전투기와 헬기, 박격포 등을 동원해 반군이 장악한 동구타를 맹공격했다.

▲ 동구타 지역에서 시리아 정부군의 무차별 폭격에 신음하는 민간인들. [연합뉴스]

전례가 없을 정도의 공격으로 이틀간 동구타에서 어린이 58명을 포함해 민간인 최소 250명이 숨졌다고 시리아인권관측소는 추정했다. 이틀 연속 100명 넘는 민간인 희생자가 나온 것이다.

이는 시리아에서 2013년 이후 이틀 동안 발생한 최악의 인명 피해다.

사망자 중에는 의사 3명도 포함돼 있으며 임신한 여성과 아기들이 팔·다리를 잃기도 했다고 영국 더타임스는 전했다.

또 지금까지 동구타에서 약 1200명이 부상했고 이 중 수백 명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현지 활동가들은 동구타 전역에서 적어도 10개 타운과 마을이 폭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동구타에 있는 민가와 학교, 재래시장은 물론 병원 시설도 시리아군의 공습을 피해가지 못했다.

시리아군 전투기들은 동구타 상공을 비행하며 반군과 민간 시설을 가리지 않고 쉴 새 없이 폭탄을 떨어뜨렸다.

동구타의 한 주민은 “미사일이 비처럼 떨어졌다”며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고 영국 BBC에 말했다.

이로 인해 동구타에 있는 병원 6곳이 타격을 받았고 이 중 3곳이 운영을 중단했다고 유엔은 밝혔다.

▲ 시리아 동구타 지역에서 시리아 정부군의 무차별 폭격에 신음하는 민간인들. [연합뉴스]

동구타의 아르빈 병원은 하루 동안 2차례 공습을 받기도 했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폭격에 숨진 환자도 속출했다.

BBC는 시리아군 전투기들의 비행은 동구타에서 ‘더는 숨을 곳이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AFP통신 사진 기자는 아르빈에서 러시아제 전투기인 Su-34 전투기가 목격됐다고 전했다.

동구타에서 활동하는 현지 의료진들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국제의료구호기구연합(UOSSM) 직원 제둔 알조아비는 “몇 달간 의약품과 의료 물자가 이 지역으로 반입이 막혔다”며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는 환자가 있어도 사실상 의료 지원을 할 수 없다”고 미국 워싱턴포스트(WP)에 말했다.

동구타 주민은 식량 부족에 허덕이고 있다. 오도 가도 못한 채 집 또는 은신처에서 불안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거주민들은 자신의 집에 있는 한 방이나 은신처에 한데 모여 폭격을 받을 시 서로를 도울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동구타에서 3주 된 아기를 데리고 사는 샤디 자드는 “지난 48시간 동안 아기가 햇빛도 보지 못하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지 못했다”며 “온기와 햇볕을 받으려고 피신한 장소에 있는 작은 창문 가로 몇 초간 데려갔을 뿐”이라고 뉴욕타임스(NYT)에 말했다.

또 현지 활동가들이 공개한 한 사진에는 가족 구성원 5명이 한 방에 모여 있고 한 어린이가 헐렁한 가운을 덮어 쓴 가운데 어머니로 보이는 한 여성이 그 어린이에 바싹 다가앉은 모습이 담겨 있다.

▲ 죽은자와 다친자가 뒤섞인 동구타 지역 의료시설. [연합뉴스]

동구타에서 빵과 쌀과 같은 기본적인 식량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물가도 급등했다.

빵 한 묶음은 전국 평균 가격에서 22배 가까이 올랐고 5세 이하 아동 가운데 12%는 사실상 영양실조에 걸린 상태다.

두 자녀의 어머니인 샴스는 “(시리아군의) 포위 때문에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며 “폭격으로 죽지 않는다면 우리는 배고픔으로 죽게 될 것”이라고 알자지라에 말했다.

UOSSM 소속의 한 현지 의사는 “주민들은 어디에도 갈 수 없는 상황”이라며 “그들은 생존을 위해 애를 쓰고 있지만, 봉쇄에 따른 배고픔으로 매우 쇠약해졌다”고 했다.

인도주의적 위기가 심해지면서 동구타가 ‘제2의 알레포’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다마스쿠스 외곽의 구호원 칼리드 압둘라베드는 현재의 동구타 상황을 두고 “미친 대재앙”이라고 부르며 밤낮을 가리지 않는 공습에 알레포가 연상된다고 전했다.

시리아 제2의 도시이자 경제 거점이었던 알레포 주의 알레포시는 7년째를 맞은 내전 중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기반 시설 대부분이 완전히 파괴됐다.

시리아 공군과 러시아군은 매일 알레포를 폭격해 이 도시는 폐허로 변했고 민간인도 2만명이 넘게 숨진 것으로 추정되며 수십만명이 피란길에 올랐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더 나아가 시리아군의 동구타 봉쇄와 공격을 두고 ‘스레브레니차 학살’을 떠올리게 한다고 분석했다.

‘스레브레니차 학살’은 세르비아계 군이 1995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동북부의 이슬람교도 마을 스레브레니차를 봉쇄하고 8천여 명을 학살인 사건을 말한다.

이슬람계 주민들이 잔인하게 살해된 스레브레니차 학살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자행된 최악의 대량 학살로 여겨진다.

이러한 상황에 시리아 정부를 겨냥한 국제사회의 비판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미국 국무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시리아 반군 장악 지역에서 벌어지는 정부군의 무차별한 공습에 깊은 우려를 표명하며, 이를 중단하기 위한 시리아와 러시아 등 당사국의 노력을 강조했다.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은 “어떤 말로도 숨진 아이와 그 부모, 그들을 사랑한 이들에게 정의를 실현해 줄 수가 없다”며 ‘백지 성명’을 냈다.

국제앰네스티도 시리아 정부가 고의로 자국민을 공격했다고 비판했고 국제 아동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 국제적신월사는 즉각적인 휴전과 공격 중단을 촉구했다.

유엔의 시리아 특사 스테판 데 미스투라는 제네바에서 “동구타가 제2 알레포가 될 우려가 있다”면서 “우리가 알레포로부터 교훈을 얻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시리아 정부는 “테러리스트들로부터 그 지역을 해방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시리아 국영TV와 관영 사나통신은 구타 지역의 반군이 다마스쿠스를 겨냥해 박격포탄을 쏜 뒤 6명이 죽고 28명이 다치면서 그 무장 세력에 보복을 가했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

▲ 동구타의 비극, 더 큰 재앙 우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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