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폭로’ 한 달
미투,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
고은·이윤택 등 ‘문화권력’ 줄줄이

심지어 천주교 사제까지 도마에
알고도 외면·방관한 책임 커
이번엔 ‘악순환 고리’ 필히 끊어야

 

지난달 26일 검찰 내부통신망 ‘이프로스’에 성추행 피해 사실을 고발하는 글이 올라왔다. “8년 전 한 장례식장에서 장관을 수행해 온 당시 법무부 간부에게 강제추행을 당했고, 이후 부당한 인사 불이익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작성자는 창원지검 통영지청 서지현 검사였다.

현직 검사가 실명을 내걸고 이 같은 폭로를 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로 검찰이 발칵 뒤집혔으나 그때까진 조직 내부의 일로 그쳤다. 하지만 사흘 뒤 서 검사가 방송에 출연해 떨리는 목소리로 “범죄 피해자들께, 성폭력 피해자들께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싶어 나왔다. 제가 그것을 깨닫는 데 8년이 걸렸다”고 말하며 파문이 일파만파로 확산됐다.

그리고 일주여일이 지난 2월 6일 최영미 시인이 문단 내 성폭력 피해를 폭로하며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은 요원(燎原)의 불길처럼 번졌다.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문단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최 시인이 ‘괴물’이란 시를 통해 지칭한 이는 바로 한국문단의 거목(巨木) 고은 시인이었다.

‘미투’는 연극계도 강타했다. 이달 14일 극단 ‘미인’의 김수희 대표가 우리나라 연극계의 대부(代父)로 일컬어지는 이윤택 연출가의 충격적인 이면을 폭로한 것이다. 김 대표는 이윤택이 자신이 만든 ‘연희단거리패’ 여성 단원에게 수시로 성적인 ‘안마’를 요구했고, 자신도 같은 방법으로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성추행을 넘어 성폭력 피해자들이 줄줄이 등장했고 임신과 낙태를 반복한 사례까지 터져 나왔다. 더욱이 극단 소속 배우가 이윤택의 ‘사과 기자회견’마저 사전 리허설을 했다고 추가 폭로하며 사면초가로 몰렸다. 연극 대부의 완전한 몰락(沒落)이었다. 불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원로 연출가 오태석과 인간문화재인 하용부 밀양연극촌 촌장으로 튀었다. 그야말로 연극계가 초토화 된 것이다.

서지현 검사로부터 촉발된 ‘미투’는 한 달 째로 접어들며 세계적 사진작가(배병우)는 물론 연예계와 대학가 등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급기야 천주교 사제의 성폭행 시도까지 불거져 나왔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공식 사과문을 발표해 7년 전 한모 신부가 남수단에서 봉사활동 중 여성 신도를 성폭행하려 했던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깊이 참회하고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한다”고 밝혔다. 한 신부가 속한 수원교구 역시 ‘수원교구민에게 보내는 교구장 특별 사목 서한’을 통해 사과를 표했다. 우리 사회 전반의 ‘부끄러운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으로, 실로 기가 막히고 참담할 따름이다.

성추행이나 성폭행 등은 오도된 ‘권력(權力)’과 깊은 함수관계를 지닌다. 서 검사가 폭로한 검찰 상급자도 그렇거니와, 고은이나 이윤택 또한 ‘문화권력’의 정점에 서 있던 인사들이다. 그 기저엔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외면하고 방관한 ‘침묵(沈默)의 카르텔’이 자리잡고 있다.

지난해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안경환 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장은 법무부장관 내정 과정에서 중도 하차했다. 과거 여성의 동의 없이 인감까지 위조해 일방적으로 혼인신고를 했던 전력이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이를 두고 최민희 전 국회의원은 “순애보가 매도당했다”고 두둔했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하나 진보적 지식인마저 그럴진대, 하물며 권력의 상하관계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야 더 말해 무엇 하랴.

지금 드러난 것은 ‘빙산(氷山)의 일각’에 불과할지 모른다. 20여년 전 공전의 히트를 쳤던 TV 드라마 ‘모래시계’의 명대사처럼 “나 지금 떨고 있니?”로 밤잠을 설치고 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말할 수 있고 말해야 한다. 스스로 고백하고 광명을 찾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길고도 질긴 악순환(惡循環)의 고리를 끊을 수가 있다. 가칭 ‘성폭력반대 연극인행동’은 SNS에 이런 글을 올렸다.

“이제야 고백합니다.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발언을 시작으로 우리는 이제야 우리 안 폭력의 실체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권위에 순응한 우리 자신이었고 위계 구조였으며, 침묵의 카르텔이었습니다. 실체를 알고 있으면서도 침묵했고 방관했던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나도 고발한다”는 용기 있는 행동으로 ‘미투’는 시작됐다. 그리고 ‘함께 하자(#WithYou)’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이번 운동이 순간의 몸부림에 그치지 않고 ‘유종의 미’를 거두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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