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소프트제주 편집장   문    소    연

고등학생인 아들아이는 0교시 수업 때문에 아침 일곱 시 전에 집에서 나가 야간자율학습 때문에 밤 열 시가 되어야 돌아온다. 씻고 밥 먹고 어쩌고 하다 보면 열한시가 넘는다.

그러면 “어서 자라”고 할 수밖에 없다. 다음 날 아침 여섯시 전에 일어나야 ‘아침밥’ 먹고 ‘지각’을 면할 수 있으니까.

어느 날 아이는 아침밥도 못 먹고 “큰일 났다”며 학교에 갔다. 밤샘 일이 잦은 내가 새벽녘에 깜빡 잠이 들어버리는 바람에 아이를 미처 깨워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날 아이는 허벅지에 검붉고 굵은 서너 줄의 매 자국을 달고 왔다. ‘매 한번 대지 않고 키웠는데….’ 아이가 겪었을 물리적인 아픔에 덧대어졌을 수치감, 굴욕감 따위를 생각하니 속이 몹시 쓰렸다.

“몇 분 안 늦었을 텐데, 이렇게 맞았니?”
“지각은 지각이니까요.”

못 깨워준 걸 미안해하는 내게 아이는 ‘스스로 못 일어난 자신의 잘못’이라고 제법 어른스런 소리를 하며 집안에 있는 자명종 시계란 시계는 다 제 머리맡에 두었다. 그러나 한창 잠이 맛있는 시기에 스스로 일찍 깨기가 어디 쉬운 일이던가. 그 뒤로도 두어 번 엄마의 늦잠과 맞물려 지각의 매 자국을 달고 돌아왔다.

어느 날은 늦지 않게 나갔는데 매 자국이 선연했다. 갑자기 배가 아파서 화장실부터 들려 가느라 교실에 늦게 들어가는 바람에 지각이 되어버렸다 했다.

“사정을 얘기하지.”
“했죠. 하지만 규칙은 규칙이니까요.”
아이는 결국 구차한 변명이 돼버리고 만 자신의 배앓이(학교 다니면서부터 툭하면 설사를 하는 과민성이 돼버렸다)를 속상해 했다.

아이는 그렇게 규칙에다 몸과 생각을 맞춰가며 그럭저럭 학교생활에 적응해 가는 모양이다. 그저 그런 성적에, 나서지 않고 튀지 않는, 평범하고 조용한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학교’라는 제도권 안에 들어가기 전인 어린 시절, 아이는 참 별스런 구석이 많았었다. 곤충을 좋아해 벌레란 벌레는 다 잡아들여 오고, 엉뚱한 질문을 끊임없이 해대 주변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들곤 했었다.

일찍 한글을 깨우쳐 책을 좋아하고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았는데, 내용과 느낌을 물으면 “책이 알지 내가 아나요. 궁금하면 직접 느껴보세요.” 하는 식의 대답으로 나를 기막히게 했었다. 어떨 땐 바보 같고 어떨 땐 영감 같았다. 무엇보다 제 또래아이들과 잘 어울리질 못해 걱정이 많았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난 뒤 아이는 학교생활에 적응이 안 되는지 몹시 힘들어했다.
어느 날은 자기가 왜 일찍 일어나야 하느냐고 묻길래 “학교에 가야잖아” 했더니, “자퇴 하겠다”고 떼를 썼다. 일찍 일어나는 것도 학교에 가는 것도 싫다는 것이다.

학교 안 다녀도 일찍 일어나긴 해야 한다니까, 왜요? 왜 그런데요? 징그럽게 물어댔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아먹는다”는 얘기를 해줬더니, 아이가 악을 쓰듯 말했다.
“그럼 일찍 일어나는 벌레는 빨리 잡아먹히겠네? 엄만 왜 벌레 입장은 생각 안 해요? 아무튼 학교는 너무 쓸쓸하단 말예요!”

크고 작은 해프닝들을 적지 않게 겪으면서 아이는 학교생활에 적응해 갔고 어느덧 고등학생이 되었다. 쓸쓸해지지 않기 위해 ‘벌레의 입장’ 따위는 잊어버리고, 비슷해지기 위해 이런저런 규칙에 자신을 맞추어가고 있는 것이다.

어디 내 아이 뿐이랴. 모두들 저마다 별스런 어린 시절이 있었으련만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만 들어가면 똑같은 기준에 매달린 ‘무더기’의 일원이 돼가고 있지 않는가.

그 오래된 울타리가 영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도 ‘적응’이라는 걸 해주는 아이를 다행스러워해야 하나? 거기다 ‘좋은 성적’까지 강요해야 흔히들 말하는 경쟁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을는지 모른다.

아이가 정말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주지도 못하고, 좋은 성적을 뒷받침해 줄만한 능력이 없어 경쟁사회가 원하는 아이로 키우지도 못하고 있으니, 난 이래저래 불량엄마의 틀을 벗어나기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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