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있는 여검사 ‘고백’이 도화선
한국 사회 전반으로 확산
적폐 청산 위한 시민연대로 생각

봉건적 계급성에 대한 해체 요구
여·남 모두 선의 피해자 없어야
성공 위해 엄정하고 빠른 수사 필요

 

 

그는 스스로를 ‘장애인복지의 역사’라고 자칭한다. 자화자찬에 대해 공감하는 후배가 어느 만큼인지 모르지만 역사의 한 자리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화가 나거나 마음에 안들면 남녀 가릴 것 없는 비하적 발언을 카리스마인양 내뱉는다. 같은 장애인이면서 장애비하적 발언도 불사하는 그는 제주사회에서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지체장애여성이 미투 운동에 용기를 내어 모 장애인단체장의 성추행사실을 고백했다. 8년만의 고백이라 한다. 그 단체장은 다른 장애여성도 성추행했다고 하는데 자술서도 썼으니 사실이라 봐도 될 것 같다. 그 역시 현재 활동 중이다.

시각장애인과 대화 과정에서 들은 이야기다. 다중장소에서 시각장애 여성이 시각장애 남성에게서 성추행을 당했다고 했다. 하지만 보이지 않기에 특정하여 누군지를 지목할 수 없었다고 한다.

몇 명의 시각장애 남성이 같이 있었기에 지목하기 더욱 어렵고 장애 특성상 현장 설명이 어렵다. 결국 사건은 흐지부지 되었는데 다만 성추행을 시도한 시각장애 남성도 지도자였다는 것으로 기억한다. 육체적·심리적 저항의 힘이 부치는 장애여성을 향한 성적 공격은 비장애인에 의한 것도 있지만 장애인끼리도 없지 않다.

대한민국은 지금 ‘미투(#me too)’운동이 한창이다. 용기 있는 여검사의 남성검사 성추행 사실 고백이 도화선이 된 ‘미투’운동은 문화계·예술계·학계·종교계는 물론 정치계까지 한국 사회 전체 영역에서 벌어지고 있다.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들은 한국 사회 각 분야에서 대표할 정도의 ‘인사’들이어서 충격이 크다.

그런데 과거에도 있었던 ‘성폭력’ 갑질이 왜 지금 반향이 클까. 작년 여러 영화인들이 ‘펄프픽션’ 등 유명한 미국의 영화 제작자에게 성폭행 당한 사실을 고백하면서 세계적으로 확산한 것은 다 아는 일이다.

이 영향도 있겠지만 필자는 촛불민주주의 시민혁명을 계기로 적폐 청산을 위한 시민연대의 시작이라 생각한다. 전통적 유교사상인 ‘삼강(三綱)’은 임금을 잘 모시고 부모를 잘 모시고 남편을 잘 모시라 했다.

이는 봉건제적 계급론이다. 불변하며 넘나들 수 없는 계급으로 순종이 미덕이라 우리는 배워 왔다. 이 봉건적 계급주의는 한국사회의 통치이념과 통치기술로 수백년 동안 조선왕조를 거쳐 ‘짐이 곧 국가’인 현대의 독재 역시 정당화하는데 일조했다.

30년 전 민주화운동으로 독재가 무너지고 형식적 민주주의와 인권에 기반한 행정과 사회적 저변이 확대됐으나 본질적 문제인 ‘봉건적 계급성’은 해체되지 못했다. 한국현대사의 일대 사건인 6년 전 첫 여성대통령 당선은 여권 신장의 결과가 아니라 가부장적 아버지(박정희)를 숭상하는 우리 사회의 봉건성의 위력이 적지 않음을 확인한 것이다.

하지만 다시금 봉건성의 악행이 적나라하게 밝혀지자 국민들은 촛불을 들었고 시민이 연대하면 적폐인 봉건적 계급 해체가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이다. 여검사의 성추행 고백은 사회 연대의 시작으로 이 파장의 깊이와 확산 정도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일 것이다.

이 운동이 성공하기 위해서 사회는 고백한 여성에게 주홍글씨라는 덫을 치지 말아야 할 것이며 남성 중 선의의 피해자 역시 없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빨리 사법부가 엄정한 잣대로 사건들을 수사하고 그 결과를 끌지 말고 내놓는 것이 좋다.

나의 고백이다. 어느 월 조회시간에 여성 직원의 옷매무새와 화장기가 맘에 안 들어 서비스기관으로서 주의를 요구한 바 있다. 며칠 후 직원이 “선택과 결정권에 대해 대표 간섭이 지나친 것 아니냐”고 했다. 순간 불쾌하기도 했지만 여성에 대한 나의 봉건성적 잔재를 인정한 바 있다. 미투 운동이 성폭력고발운동을 넘어서서 한국 사회 구석구석 만연하여 있는 다양한 분야의 적폐청산 운동으로 발전할 것이라 믿는다.

글을 마무리할 때 즈음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성폭행사실이 여성비서에 의해 폭로됐다. 안 지사와도 친분이 꽤 있는 선배의 말이다. “명예는 늙어서가 아닌 젊었을 때 지켜야 하는 것이다. 선과 악, 옳고 그름만 잘 판단하면 늙어 명예는 쌓이는 것인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가 보다” 선배와 나, 충격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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