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관계 이어주는 길
제주 ‘도로’는 느는데 ‘거리’는 줄어
특히 도로차량 흐름만 우선

속도와 통과의 논리로만 구축한 탓
사람 중심 여유로운 길 희망
건축과 도시공간 소통할 수 있어야

 

건축은 지어짐과 동시에 그대로 형상화되어 도시환경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건축물을 세우고,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동네가 생기고, 동네는 사람들간의 관계를 이어주는 길을 따라 형성된다. 건축물이 줄지어 서있는 도시가로 역시 길과 도로로 구성되고 그로 인해 도시환경과 거리풍경이 만들어진다.

거리는 도시의 근원적 공간이다. 모든 사람이 만족할만한 도시환경이 되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지닌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는 도시기능을 제공해야 한다. 다양한 이용자들의 의견을 수용하여 소통을 이루어낼 때 구성원들 사이에 차별과 경계가 없는 포용적 공간이 완성된다.

도로와 거리로 이루어진 제주의 ‘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도로는 많이 늘어나는데 반해, 거리는 줄어드는 것 같다. 도로는 건설비만 투입하면 쉽게 만들 수 있다. 토지를 매입하고 아스팔트포장을 해놓으면 차량들의 이용량은 금세 늘어난다.

반면에 거리는 돈이 있다고 해서 빨리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거주민들이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과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다양한 종류의 가게가 들어서고, 없어져 가면서 거리의 특징을 형성하고 사람들을 유인할 수 있어야 한다.

도시의 생명력을 불어넣는 소통체계에서 길과 거리들의 역할이 매우 크다. 큰길은 사람이 차량과 건축물과 주변환경 등이 원활히 소통할 수 있는 순환고리가 사람중심이 되도록 해야한다.

그런데 우리 제주에서 만나는 큰길은 차량의 흐름만을 우선 생각하여 넓고 크게 닦아 놓기만 했다. 소통을 위한 도시의 순환체계가 사람 중심이 아니다. 차량을 위해 크고 넓게 뚫어놓은 길들은 결국 차량으로 교통지옥의 홍역을 치르고 있다. 차량이 늘어서 뿐만도 아니고 사람이 배제된 채 속도와 통과의 논리로만 획일적, 물리적인 길로 만들어진 탓이다.

골목길이며 작은 길은 사람과 건축물을 둘러싼 주변 도시환경을 시각적, 공간적으로 연결관계로 만드는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매개가 된다. 골목길과 만나는 주변풍경들은 거주민들이 공존하는 열린 마음이 담긴 삶의 공간이었다.

이웃집 사정을 훤히 알 수 있는 예전 시골마을의 골목길에서는 이런 풍경을 예사롭지 않았다. 허나 요즘 도시에선 집들이 동네를 이루는 주택가라고 해도 여간해서 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니다.

한 뼘의 땅이 아쉬운 마당에 남을 배려할 여유가 없다.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며 부부싸움의 소란스러움까지도 길을 지나며 들을 수 있었던 인간적인 삶의 공동체가 산업화 현대화에 밀려 점차 우리 곁에서 사라지고 있다.

주차공간이 부족하여 길 한쪽에는 언제나 차들이 세워져 있고, 그 옆으로 차 한대가 간신히 지나갈 정도다. 그런데도 동네 아이들은 공놀이를 하고 술래잡기를 한다. 차를 피하려면 그야말로 담벼락에 바싹 붙어야 할 지경이다.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거리,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골목길이 아쉽다. 아무리 도로와 주차장이 시급하다 할지라도 사람 사는 공간이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

제주마을의 길에서 만나는 삶의 모습은 바로 이런 인간적인 정서와 안팎의 경계가 느슨한 하는 여유로움을 주는 풍경이어야 하겠다. 사람중심의 생각으로 좁은 길은 좁은 길답게 사람들끼리 서로 마주치는 시선이며 몸의 스침이 많을수록 좋다.

사람 사는 냄새를 풍기며 길과 집이 더불어 물리적, 정신적 공간을 넘나드는 관입과 소통이 이뤄지는 마을풍경이 좋다. 도시는 길과 건축이 때로는 질서 있게, 때로는 혼잡하게 서로 소통하고 얽히며 일상을 만들어 가는 살아있는 유기체인 것이다.

조금 못생기고 만만하지만 주변을 고려한 건축과 도시, 환경의 집합이 좋은 도시의 요소다. 혼자만 아름다운 건축물이 도시의 경쟁력을 만들지는 않는다. 건축과 도시공간이 서로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도시와 건축, 건축과 건축이 만나는 모양새가 중요하다. 길과 건축이 편안하게 만나고, 건축이 주변공간과 소통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변과 장소성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이처럼 무엇을 만들기보다 무엇인가에 맞추어 주는 소통과 공유가 우선되어야 좋은 길, 좋은 건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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