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정봉주·민병두 등 줄줄이
더불어민주당 ‘패닉’ 상태
차기 대권주자 몰락 聖域 무너져

가해자 가족에 度넘은 비난·공격
폭로자 경우도 2·3차 피해
“미투운동 本質 희석” 되새겨 봐야

 

자고 일어나면 터지는 ‘미투(#MeToo·나도 당했다)’ 폭로로 온 나라가 뒤숭숭하다. 특히 지난주(3월 5일) 터진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비서 ‘성폭행 의혹’은 그 충격파가 너무 컸다. 친구인 박수현 더불어민주당 충남지사 예비후보가 “너무나 충격적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을 정도다.

안희정이 누군가. 평소 참신하고 정의로우며 개혁적 이미지를 지녔던 그다. 때문에 여야를 떠나 자타가 공인하는 차기 대권(大權)주자 1순위였다. 그러나 정무비서(이후 면직)인 김지은씨의 성폭행 폭로로 대권은커녕 정치 생명이 사실상 끝나는 몰락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김지은 씨는 지난 5일 모 방송에 출연해 “작년 6월 말부터 4차례에 걸친 성폭행과 함께 수차례의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더욱 기가 막힌 일은 ‘미투 운동’이 확산 일로에 있던 2월 25일에도 밤에 불러내어 또다시 성폭행을 했다는 것이다.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고 폭로 배경을 밝힌 이유이기도 하다.

당초 안희정 지사 측은 “부적절한 성관계는 인정하지만 합의에 의한 성관계였다”고 해명에 나섰다. 하지만 청와대에 청원 글이 쏟아지는 등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확산되자 입장을 번복했다. 안 지사는 6일 새벽 페이스북을 통해 “모든 분들(특히 김지은씨)에게 죄송하다.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비서실 입장은 잘못”이라며, 도지사직 사임(辭任)과 함께 일체의 정치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국민을 더 분노케 한 것은 성폭행 폭로 당일인 5일 오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 내용이었다. 이날 안 지사는 “우리는 오랜 기간 힘의 크기에 따라 계급을 결정짓는 남성 중심의 권력질서 속에서 살아왔다”며 “이런 것에 따라 행해지는 모든 폭력이 다 희롱이고 차별”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미투 운동을 통해 인권 실현이라는 민주주의 마지막 과제에 모두가 동참해 달라”고 강조했었다. 이 같은 ‘이중적인 행태’에 국민적 분노가 들끓은 것은 아주 당연한 결과다.

이제 ‘미투의 성역(聖域)’은 무너졌다. “좌파 진영의 총체적 이중성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자유한국당 등의 총공세 속,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아직도 ‘패닉’ 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안희정 전 지사에 이어 정봉주 전 의원과 민병두 의원, 경우는 다르지만 박수현 예비후보까지 줄줄이 성추문에 휘말려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시장에 출마하려던 민병두 의원은 성추행 폭로가 나오자마자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혀 민주당을 더욱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예상 밖의 일들로 인해 지금 민주당의 분위기는 침울과 참담 그 자체다.

‘미투 운동’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를 도려낸다는 점에서 아주 바람직스러운 일이다. 전문가들 역시 미투 운동이 계속되어야 하며 개인의 영역에서 사회 전체로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미투 공작설(工作說)’이 재등장하는가 하면, 성폭력 가해자 가족을 향한 도를 넘은 공격과 용기 있는 폭로자의 경우에도 2·3차 피해가 잇따르고 있어 미투 운동의 ‘본질(本質)’이 희석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희정 전 지사의 성폭행을 폭로한 김지은씨는 12일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2차 피해를 겪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김씨는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를 통해 배포한 편지에서 “저를 비롯한 제 가족은 어느 특정 세력에 속해 있지 않다”며 “더 이상 악의적인 거짓 이야기가 유포되지 않게 도와달라”고 밝혔다. 예상했던 일들이지만 너무 힘이 들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한 채 숨죽여 지내고 있다는 하소연이다.

이와 함께 인터넷상에서는 배우 조재현씨 등 성폭력 가해자 가족, 특히 딸이나 부인 등을 향해 일부 누리꾼의 입에 담지 못할 도(度) 넘은 공격이 쏟아지고 있다. 어쩌면 이들 가족 역시 또 다른 ‘희생양’임에도 불구하고 비뚤어진 분노를 마구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배우는 고(故) 조민기의 빈소에 다녀온 후 자신의 SNS에 씁쓸한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어제와 오늘, 빈소에 다녀왔지만 그가 28년간 쌓아온 연기자 인생의 그 인연은 어느 자리에도 없었다”는 것. 이어 “뭐가 그리 두려운가? 조민기의 죄는 죄이고 그와의 인연은 인연인데, 경조사 때마다 카메라만 쫓던 그 많은 연기자는 다 어디로 갔는가?”라는 소회를 남겼다.

‘미투 운동’의 와중에 드러난 세태(世態)의 한 단면이 아닐 수 없다. #MeToo의 ‘끝’은 과연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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