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노인이 된 제주4·3 수형인(受刑人)들이 지난 19일 제주지방법원에서 청구인 신분으로 당시의 피해 상황을 증언했다. 이날 심문에서 4명의 수형인들은 1948년과 1949년 제주도에서 이뤄진 군법회의가 정상적인 재판이 아닌 불법적으로 이뤄졌고 억울하게 수형당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현창용 할아버지(86)는 “죄명도 모른 채 인천형무소로 끌려갔다. 이후 6·25 전쟁이 발발하자 간수들은 도망 갔다. 당시 북한군이 형무소를 점령했기 때문에 북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평양 군관학교에서 훈련을 받았지만 본인의 뜻은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이후 조선노동당 소속 군인으로 남한에 내려왔다가 붙잡혔고 대구형무소에 수감됐다. 사형 선고 및 무기징역에 이어 20년으로 감형돼 1974년 출소했다.

현 할아버지는 1973년에 작성된 ‘4·3 전향서’도 본인이 쓴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4·3 전향서는 4·3 폭동에 가담한 것을 인정하는 내용이었다. 1948년도에 작성된 군법회의 내용엔 좌익사상에 물들어 좌익운동에 참여했다고 기록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 할아버지는 지난 1974년 출소한 뒤 제주로 내려왔지만 검찰에서 또다시 고문이 자행됐다고 덧붙였다.

제주 4·3과 6·25 전쟁을 관통하는 현창용 할아버지의 삶은, ‘우리나라 현대사의 비극(悲劇)’ 바로 그 자체다. 죄명도 모른 채 형무소에 수감되고 동족상잔의 전쟁에 휘말려 인생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이런 기구한 운명이 또 어디에 존재할 것인가.

이제 백발노인이 된 열여덟명의 제주4·3 수형인들은 “평생의 한을 풀겠다”며 지난해 4월 19일 재심청구를 했다. 하지만 재심 청구의 근거가 되는 판결문 등 입증자료가 존재하지 않아 재심까지에는 적지 않은 난항이 예상된다.

판결문 등의 입증자료가 없는 것은 국가의 잘못이지, 이들 억울한 수형인들에게 그 책임을 전가할 수는 없다. 청구인측 변호인인 법무법인 해마루 측은 수형인 명부가 형집행 근거가 되고 생존자 진술을 통해 당시 구속과 재판의 위법성이 인정된다며 재심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재심 청구에 따른 심문은 앞으로 세 차례 더 진행되고 오는 6월 14일 종결될 예정이다. 제주4·3 수형인들은 지금 백발노인으로 이승의 삶이 그리 남지 않았다. 법에도 눈물이 있다면 이들이 ‘평생의 한(恨)’을 풀고 갈 수 있도록 최대한의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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