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도심 재생 노력 불구 희망 불투명
‘돌봄과 소통’ 마을에서 다시 찾아야

 

 

10년 전 읽었던 조한혜정 교수의 ‘다시, 마을이다’라는 책을 다시 읽는 중이다. 어려운 시대를 살면서도 아이들이 있었고, 학교가 있었고, 이웃과 마을이 있었기에 간간이 행복했고, 따뜻한 말, 친밀한 감정, 신뢰의 눈길이 힘이 되는 사회적 관계를 맺어가야 우리의 삶이 뭔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이 가슴을 쳤다.

최근 마을교육 공동체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제주시 삼도2동의 얘기다. 북초등학교 내에 있는 ‘김영수도서관’을 새로이 단장하면서 마을 내에 유휴시설을 활용해 지역주민과 학생들이 함께하는 아이 돌봄 문화공간을 마련해보자는 논의가 시작됐다.

또 얼마 전 제주여성가족연구원 주관으로 제주형 돌봄공동체인 수눌음 육아에 대한 정책포럼이 개최됐다. 마을단위의 돌봄시스템을 정착시켜 아이와 부모가 모두 행복한 환경을 만들어나갈 것인지 전문가들의 의견이 제시됐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왜 다시 마을과 돌봄의 중요성에 대한 화두가 던져지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세상이 계속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사라져버린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한때 허름한 옷, 거친 피부, 촌스러운 말투가 부끄러운 시절이 있었다. TV 드라마를 보면서 서울말을 배워야만 교양인이 되는 듯 했고, 잡지에 유행인 새 옷을 사는데 열중했다. 어릴 적 살던 동네를 떠나 고층의 아파트로 이사하고 유행하는 가구를 들이는 것이 내가 잘 살고 세상이 좋아지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더 이상 좋아지지 않았다. 경제 침체·청년 실업·양극화는 심해졌다.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3포세대’가 등장했고 저출산과 고령화가 날로 심각해졌다.

도시를 상징하는 아파트로 인해 골목과 마당이 없어지면서 ‘우리’라는 공동체마저 사라졌다. 주변을 돌아볼 마음의 여유보다는 경쟁과 비교만이 남았다. 더 이상 세상이 좋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리고야 말았다.

원도심은 더욱 심각하다. 과거의 명성만 남겨진 원도심이 급작스럽게 도시재생을 한다며, 원도심의 옛 것에 가치가 있다며, 과거 어르신들의 남루한 삶의 증거들이 남겨진 오래된 골목을 걷는 원도심 투어를 한다고 난리법석이다.

원도심 활성화와 도시재생이라는 명분으로 행정의 대상과 재료, 문화관광의 아이템이 되어갔지만 정작 골목의 주인들인 원도심 주민은 동네의 꿈을 말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여전히 희망은 불투명하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태어나는 아이를 마을 사람 모두가 축복하고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균형을 이루고 사는 문명은 예부터 이어져왔던 것이다. 조한혜정 교수는 인류가 협동을 하는 지혜로운 존재가 된 것은 힘을 모아 아이를 키워야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협력하고 소통하며 한 장소에 정을 붙여 살게 되면서 사회가 형성되고 마을과 사회에 돌봄의 영역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성장의 중심의 시기를 지나 더 이상 성장으로 위험을 가릴 수 없는 사회에서 빠져나오는 일은 이제라도 사라지고 있는 돌봄과 소통의 영역을 마을에서부터 다시 찾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마을에서 아이를 함께 키우는 돌봄의 복원을 원도심에서부터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마을에서 모여서 밥 먹고 아이들도 같이 키우고 오순도순 살면서 동네가게도 차려보고 마을기업도 만들면서 서로를 돌보며 함께 잘 살아가는 마을을 만드는 것이 마을 만들기와 도시재생 정책의 진정한 본질일 것이다.

주민들이 매일 모여 마을 일을 토론하고, 마을 축제와 잔치를 함께 기획하며 즐거워하고, 마을 역사와 소식을 기록하느라 주민 누구나가 기자나 글쟁이가 되고, 동네 아이들과 어르신이 함께 노래하며 서로 위안과 행복을 나누는 마을을 상상하는 일이 어렵지 않았으면 좋겠다. 결국 마을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게 좋은 사회의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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