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사건’은 미군정기(美軍政期)에 발생해 7년여에 걸쳐 지속된 비극이다. 특히 한국 현대사에서 6·25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극심한 사건이기도 하다.

1947년 ‘3·1절 발포사건’으로 촉발된 4·3사건은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 출동 과정에서 2만5000명~3만 여명의 인명 피해를 가져왔다. 가옥 4만 여 채가 소실됐으며 도내 중산간 지역의 상당수 마을이 폐허로 변했다. 학교와 면사무소 등 공공기관 건물이 불탔음은 물론 각종 산업시설이 파괴됐다.

지난 1954년 사건이 종료되면서 복구작업에 나섰지만 ‘4·3’이 제주공동체에 남긴 후유증은 쉽게 치유되지 않았다. 현재도 연좌제와 국가보안법의 족쇄(足鎖)가 유가족들을 얽어매고 있으며, 고문 피해로 인한 후유 장애 및 레드(Red) 콤플렉스 등 정신적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다.

‘제주4·3 위원회’가 심사해 확정된 희생자를 보면 토벌대(討伐隊) 1만2000명(84.3%), 무장대가 1756명(12.3%)로 집계됐다. ‘무장대’ 중에는 10대 이하 어린이가 5.4%(770명), 61세 이상 노인 6.3%(901명), 여성 희생자도 21.1%(2990명)로 나타나 당시 실상을 외면한 정부의 과도한 진압작전이 전개됐음을 웅변하고 있다.

특히 전국 각지 형무소에 수감됐던 4·3사건 관련자 대부분은 즉결처분(卽決處分)된 것으로 알려졌다.

‘4·3 위원회’는 예비검속 및 형무소 재소자를 포함한 희생자는 대략 3000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시신(屍身)마저 찾지 못한 유족들이 대다수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28일 제주를 방문, 현재 국회에 계루 중인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에 대해 국회의원들이 진지하게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희룡 지사도 4·3 특별법 개정안 처리와 4·3 수형인(受刑人)과 유족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공식적인 사과를 촉구했다.

정세균 의장이나 원희룡 지사의 발언이 ‘정치적 수사(修辭)’에 머물지 않고, 제주4·3의 진정한 해결을 위한 단초가 되기를 바란다. 70년이란 세월이 흘렀음에도 아직도 ‘미완(未完)’으로 남아 있는 ‘제주4·3’에 대해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줄 것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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