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 중 하나
70년 세월 불구 아직 ‘未完’
민의 철저 외면한 美군정 책임 커

이승만, ‘정통성’에 대한 도전 인식
초토화 작전…숱한 인명피해
文 대통령 ‘완전한 해결책’ 내놓길

 

오늘은 제주 4·3사건이 발생한지 70주년이 되는 날이다.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는 등 봄 기운이 물씬 무르익고 있으나, 제주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그 자체다. 70년이란 참으로 긴 세월이 흘렀건만 제주4·3은 아직도 미완(未完)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제주 4·3사건은 한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 중 하나다. 1947년 3월부터 1954년 9월까지 7년여 동안, 당시 제주도민 10분의 1이 넘는 3만여명의 사람들이 희생된 미증유(未曾有)의 사건이다.

발단은 1947년 3·1절 기념대회와 4만 여명이 참가한 3월 10일의 총파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는 전국적으로 흉년이 든 데다 미곡 정책 실패로 제주경제는 공황에 빠진 상태였다. 더욱이 미군정이 일제의 관리들을 그대로 등용함으로써 도민들의 불만이 고조됐다.

그런데도 미군정은 민의를 외면한 채 경찰과 서북청년회원들을 동원해 총파업 등에 가담한 이들을 가혹하게 탄압했다. 고문으로 인해 사망자까지 발생하며 민심의 분노는 끓어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남로당 제주도당이 1948년 4월 3일 12개 경찰지서 등을 급습하며 총파업을 통한 항쟁은 무장투쟁으로 변질되고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이처럼 4·3이 시작된 것은 미군정 시절이었다. 하지만 제주도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군대가 본격적으로 투입되어 대대적인 초토화(焦土化) 작전 전개로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된 것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수립된 이후였다.

이승만 정부는 제주도의 소요 사태를 정권의 정통성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했다. 그해 10월 포고령과 함께 소개령을 내렸다. 이어 48년 11월 17일 제주도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하며 무자비한 초토화 작전을 펼쳤다.

이러한 광기(狂氣)는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더 심해졌다. 입산자 가족 등에 대한 예비검속으로 체포된 수많은 사람들이 계엄군에게 학살당했다. 4·3사건과 관련 전국 각지의 형무소에 수감됐던 관련자들도 즉결처분됐다.

아무리 비상시국을 감안하더라도 정부가 자국민을 상대로 군대 등을 동원해서 끔찍한 폭력과 살상을 벌인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반인류적 범죄가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제노사이드(집단학살)는 ‘한라산 금족령(禁足令)’이 1954년 9월21일 풀리면서 비로소 그 막을 내렸다.

제주 4·3사건은 해방 직후의 좌우 이념 충돌과 세계열강의 냉전적 대결 등이 총체적으로 결합된 시대의 비극(悲劇)이었다. 사건이 끝난 후에도 4·3 관련자들은 ‘빨갱이’란 낙인 속에 연좌제와 국가보안법 등의 족쇄에 묶여 숱한 곤욕과 시름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만큼 4·3이 제주공동체에 남긴 후유증은 쉽게 치유되지 않았고 오늘에까지 이른다.

물론 그동안 4·3과 관련해서도 진전이 있기는 했다.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가 이뤄졌고, 2003년 10월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대표해 ‘국가권력에 의해 대규모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제주도민에게 공식 사과했다. 그리고 2014년엔 4·3희생자 추념일이 국가 기념일로 제정됐다. 가장 큰 수확은 반세기 이상 침묵해야 했던 제주인들이 이제는 4·3을 밝은 곳에서 말하고 보상까지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제주4·3의 완전한 해결’을 100대 국정 과제로 선정했으나 이렇다 할 성과가 없다. 4·3문제 해결의 관건이 될 ‘4·3 특별법 개정안’도 국회에 계류 중인 상태로 발이 묶여 있다. 다만 문 대통령이 70주년 추도식에 직접 참석하고, 그간 금기시됐던 ‘잠들지 않는 남도’ 노래도 추념식장에 울려 퍼진다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내년엔 대통령 자격으로 꼭 참석해 제주의 한(恨)과 도민들의 눈물을 닦아주겠다”고 굳게 약속했었다. 따라서 이번 추념식에서 도민들에게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주는 실질적인 해결책을 필히 내놓기를 바란다.

제주4·3을 대변하는 안치환의 ‘잠들지 않는 남도’는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외로운 대지의 깃발 흩날리는 이녁의 땅/어둠살 뚫고 피어난 피에 젖은 유채꽃이여/검붉은 저녁 햇살에 꽃잎 시들었어도/살 흐르는 세월에 그 향기 더욱 진하리/ (후렴) 아~아~아~아~/아, 반역의 세월이여/아, 통곡의 세월이여/아, 잠들지 않는 남도 한라산이여!”

이제 ‘반역과 통곡의 세월’을 넘어 남도(南島)는 평안하게 잠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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