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70주년 이후 새로운 과제는 ‘미국의 책임 규명’이란 주장이 제기됐다. 특히 4·3과 관련 언론보도 시 깊이 있는 분석을 바탕으로 실체를 명료하게 기술하고, 지역 내 논의를 확장시키는 ‘공론장’으로서의 역할에 보다 충실을 기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 같은 주장은 (사)제주언론학회(회장 양원홍)가 지난 12일 설문대여성문화센터에서 개최한 4·3 70주년 기념 ‘언론을 통해 본 제주4·3과 광주5·18’ 정기학술세미나에서 표출됐다. 이날 발제는 고영철 제주대 언론홍보학과 교수와 정용복 한양대 언론학 박사가 맡았다.

정용복 박사는 ‘제주4·3에 관한 신문보도 프레임 연구’ 발표에서 “4·3사건이 표피적으로 다뤄졌음을 나타내는 스트레이트 기사가 663건으로 기획 및 해설기사 124건보다 월등히 많았다”며 “4·3 70주년 이후의 언론은 깊이 있는 취재와 보도로, 아직 밝혀지지 않은 4·3의 진상(眞相)을 규명하고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주4·3특별법이 제정된 1999년 7월 이후 2017년까지 보도된 5개 신문(도내 일간 3곳, 중앙 일간 2곳)의 4·3 기사 977건을 분석한 결과다.

정 박사는 “2013년 4·3위원회의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와 2017년 제주4·3평화재단의 ‘화해보고서’ 발간으로 역사적 사실들이 많이 밝혀졌지만, 당시 학살의 주체와 미국의 역할 등 해소되지 않은 사실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면서 “언론이 스스로 4·3 전문가를 육성하는 등 긴 호흡으로 이 문제를 규명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영철 교수도 ‘한국신문에 투영된 제주4·3’ 발제를 통해 “지금 4·3의 전국화와 세계화가 새로운 과제로 대두되고 있는데, 4·3이 왜 전국화 및 세계화 돼야 하는 것에 대해선 아무도 설명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용복 박사 역시 “4·3의 정신을 계승하자는 보도를 자주 접하게 되는데, 무엇이 4·3의 정신인지 실체가 분명하지 않다”면서 “언론은 4·3 정명(正名)에 앞서 제주4·3의 정신부터 명확히 끄집어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제주4·3이 ‘한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 중 하나’라고 강조하면서도, 정작 국립대학교인 제주대학교조차 이렇다 할 4·3연구소가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개탄’도 나왔다. 5·18이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승격된 데는 지역 학계의 지대한 공헌이 있었다는 점에서, 제주지식사회의 무관심에 대한 강한 비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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