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잡은 南北, 담대한 발걸음 시작
한반도에 ‘평화의 봄’ 오나
유구한 역사 공유 韓民族 재확인

남북교류협력 물꼬 튼 감귤보내기
2002년 訪北체험 ‘생생’
‘백두산 만병초’ 다시 볼 수 있기를

 

남북(南北) 정상회담 관련 뉴스가 신문 지상을 온통 도배하고 있다. 양측은 ‘판문점 선언’을 통해 “남북 평화와 공동 번영,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우리 힘으로 이루기 위해서 담대한 발걸음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더 이상 전쟁은 없다”는 큰 기대 속 한반도에 ‘평화의 봄’이 성큼 다가오는 모양새다.

제주정치권도 일제히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라산의 흙과 백두산의 흙으로 기념식수를 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앞으로 제주가 남북이나 남북미, 남북미중의 정례적인 평화회담 장소로 활용되길 바란다”고 큰 기대감을 드러냈다.

특히 남북회담을 계기로 ‘제주감귤 북한보내기 운동’도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민간 차원의 이 운동은 당시 경색됐던 남북교류협력에 물꼬를 트는 중차대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른바 ‘비타민C 외교’였다.

지난 1999년부터 시민단체와 농가 등을 중심으로 시작된 제주감귤보내기 운동은 2010년까지 계속됐다. 이 기간 약 6만6000여톤의 우리 농산물이 북한에 답지됐다. ‘고난(苦難)의 행군’ 시기를 보내던 북측이 크게 반겼음은 물론이다. 이에 화답한 북의 초청으로 제주도민들이 2002년 5월~2017년 11월 4차례에 걸쳐 북한을 방문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필자도 2002년 5월의 1차 방북 시 취재차 동행했었다. 벌써 16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북한의 산하(山河)와 사람 등 그때의 기억(추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2002년 5월10일 오전 11시, 대한항공 전세기가 제주공항 활주로를 서서히 벗어나며 힘찬 날갯짓을 했다. 순간 253명의 도민들 표정엔 설렘과 함께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도 그럴 것이 반세기가 넘는 단절(斷絶)의 시간과 공간을 뚫고 제주~평양 직항로를 통해 말로만 듣던 북녘 땅을 찾아나서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평온한 시골풍경과 함께 평양의 전경이 시야에 들어온 것은 오후 1시 20분. 도민방북단을 태운 비행기는 곧 평양(순안)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트랩을 내리는 방북단을 처음 맞은 것은 청사 위에 설치된 김일성 주석의 대형 사진과 붉은 색의 평양(PYONG-YANG) 입간판, 그리고 오월의 상큼함을 담은 시원한 바람이었다.

비행기를 내려서도 다소의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던 도민방북단은 고려항공 여승무원의 “반갑습네다”란 인사에 비로소 밝은 웃음을 터뜨리며 공항을 무대로 사진을 찍는 등 북녘 땅을 처음 밟는 감회와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순안공항에서 평양으로 이어진 가도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던 황철나무가 아직도 애잔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우리가 여장을 푼 고려호텔은 1985년 건설된 45층 쌍탑건물로, 500여개의 객실에 높이만 140m에 달하는 외국관광객 전용의 특급호텔이었다. 호텔지하에 사우나를 비롯 가라오케와 안마실이 갖춰져 있는 등 예상과는 달리 ‘자본주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마침 평양에선 대규모의 ‘아리랑축전’이 열리고 있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 맞대응해 북한주민들을 위무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때문에 경계가 다소 느슨해서 호텔 밖 50m에 아리랑축전에 참가한 조총련이 임시로 만든 술집(포장마차)도 드나들 수 있었다. 낯선 북한 사람들과 함께 평양의 밤하늘 아래서 북의 들쭉술과 룡성맥주, 기린맥주 등을 마실 수 있는 것은 ‘행운’이라는 게 우리를 감시(?)하던 북측 ‘안내원 선생’의 설명이었다.

제주도민방북단은 5박6일간 평양을 중심으로 북한 곳곳을 경험했다. 고구려 시조 왕의 무덤인 동명왕릉을 위시해 김일성 주석의 생가인 만경대 고향집, 자작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삼지연도 둘러봤다. 남측과는 달리 풀코스로 나오던 평양의 단고기(개고기)와 그 유명한 대동강변 옥류관의 평양냉면도 맛봤다. 하지만 그토록 고대했던 백두산의 천지(天池)는 끝내 우리를 허락하지 않았다.

“북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고 말한 이는 소설가 황석영이었다. 내가 찾았던 북녘에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으며, 그것도 유구한 역사를 공유하고 풋풋한 정을 지닌 한민족임에 틀림없었다. 뜬금없이 16년 전의 일을 기억해낸 것은, 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바라보며 느꼈던 소회(所懷)의 연장선상이다.

손잡은 남과 북은 ‘한반도 평화’의 새 출발을 선언했다. 한 술에 배가 부를 리야 없겠지만, 같이 손잡고 가다보면 나름대로 길이 나올 것이다. 겨울이 채 가시지 않은 오월의 백두산(白頭山)에 함초롬이 피어 있던 ‘만병초’를 다시 볼 날이 있기를 학수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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