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판사 파면’ 청원결과 법원 전달
법조계 “三權분립 위배” 지적
당초 우려했던 ‘떼법’ 논란 현실로

금감원도 이른바 ‘삼성 죽이기’ 나서
‘度 넘은 공세’ 비판여론 비등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다 태워서야”

 

 

삼권분립(三權分立)은 국가권력을 입법·행정·사법 셋으로 나누고, 이를 각각 별개의 독립된 기관에 분담시켜 상호간에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제도다. 궁극적으로는 국가권력의 집중과 남용을 방지하려는 정치조직의 원리다.

이는 국가의 활동을 강화해 정치적 능률을 올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권력의 남용과 자의적 행사를 방지함으로써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로크와 몽테스키외에 이르러 근대자유주의의 정치원리로 확립됐다.

우리나라도 제헌(制憲) 당시부터 이 원리를 받아들여 시행했다. 현행 헌법에도 입법권은 국회에,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행정부에, 그리고 사법권은 법관 등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않고는 파면되지 않는다’(헌법 106조 1항)는 규정 또한 ‘삼권분립’을 명문화한 것이다.

행정권의 핵심인 청와대가 대법원에 전화를 걸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정형식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파면하라는 ‘국민청원’을 전달한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에게 청원 내용을 전달한 시점은 국민청원이 23만건에 이른 지난 2월 22일이라고 한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삼권분립과 법치주의’를 해치는 심각한 행위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대통령은 대법원장과 대법관 임명권을 갖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가 특정판사를 파면하라는 청원을 전달하면 사법부가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임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앞으로 정 판사가 인사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청와대 게시판 ‘국민 청원’은 국민여론의 창구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순기능적인 측면이 있다. 하지만 당초부터 ‘법 위에 떼법’이라는 논란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많았다. 이번처럼 판사의 판결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 판사를 잘라버리라는 것은 정상적인 여론이 아닌, 그야말로 ‘인민재판식 폭력행위’나 마찬가지다.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에서 보듯이 마음만 먹으면 국민청원 20만건 돌파는 ‘식은 죽 먹기’일 수도 있다. 만에 하나 임종석 비서실장이나 조국 민정수석을 파면하라는 국민청원이 20만건을 넘으면 청와대는 과연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남의 가슴에 꽂는 비수(匕首)는 언젠가 스스로에게도 돌아오는 법이다.

남북 정상회담 등에 힘입어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의 인기는 현재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아침 저녁으로 변하는 게 민심(民心)임을 알아야 한다. 언제 어느 순간 그 인기가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그러기에 일찍이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다. ‘정도가 지나치면 미치지 못함과 같다’는 뜻이다.

최근 큰 논란이 일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만 하더라도 그렇다. 금융감독원은 이달 1일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회계처리 기준을 위반했다는 감리 결과를 발표했다. 당초 이 회사 회계 처리에 문제가 없다고 밝힌 것도 금감원이었고, 투자자들은 이를 철석같이 믿고 투자에 나섰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자 ‘분식(粉飾) 회계’라고 판정을 번복했다.

그 이후 사흘 새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시가총액 8조5000억원이 증발해버렸다. 당국 발표를 믿고 투자를 했던 투자자들의 입장에선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회사 측과 소액 투자자들이 이에 반발해 금융당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당연지사다.

더욱이 이 사안에 대한 최종 판단 권한은 금융감독위원회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금감원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회계 감리 결과를 공개해 혼란을 부추겼다. 금감원은 내부자가 미공개 정보를 활용해 주식을 팔아치울 가능성이 우려돼 공개했다고 해명하지만 변명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어떤 상장사 회계 감리 결과도 금융위 결정 전에 공개한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악연(惡緣)’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현 집권세력이 ‘삼성 죽이기’에 나섰다는 음모론이 경제계를 중심으로 나오는 이유다. 삼성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면 모를까, 자칫 빈대 잡으려고 초가 삼간 다 태우는 우(愚)를 범하지 말기를 바란다.

정권은 유한하다. 그러기에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다 이룰 수는 없다. 명분(名分)이 좋다고 부당한 과정마저 용납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 문재인 정부도 ‘선택과 집중’을 통해 국민을 위한 진정한 실리(實利) 찾기에 나서야 한다.

저작권자 © 제주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