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 외상을 뜻하는 트라우마(trauma)는 영구적인 정신 장애를 남기는 충격을 말한다. 따라서 그 충격을 받았던 때와 유사한 상황이 발생하면 비슷한 정신적 충격 등 고통을 유발한다.

이러한 트라우마 가운데 제주4·3을 빼놓을 수 없다. 가장이 죽임을 당하며 평화롭던 가정이 풍비박산 나고 마을이 불타며 삶의 터가 파괴되던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충격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자동차와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면 4·3 당시 호루라기를 불어대던 사람들에 의해 차량에 실려 학살현장 등으로 끌려가던 상황이 떠올라 몸이 바들바들 떨린다고 호소하는 4·3 생존자가 있다.

그리고 2015년 제주도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에서 전체 4·3 생존희생자 174명 중 110명, 61세 이상 고령 유가족 1만2246명 중 101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생존희생자의 39.1%와 유가족 11.1%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고위험군’으로 나타났다. 또한 생존희생자 중 41.8%가, 유가족은 20.4%가 전문가 상담이 필요한 ‘중증도 우울’로 조사됐다. 정상군은 생존희생자의 34.5%, 유가족의 53.7%에 그쳤다.

4·3이 발생한 지 70년이 다 돼 가는 시점에서도 생존희생자와 유가족의 절반 이상이 ‘정상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만큼 트라우마 상태가 심각함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대책은 지지부진하다. 4·3생존희생자와 유가족의 심리적인 안정과 상처 치유를 위한 제주4·3 트라우마 치유센터 설치 등을 골자로 하는 4·3특별법 전부개정안이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여야간 정쟁이 문제다. 지난달 4·3 제70주년을 전후해 여야 정치권에서 4·3특별법 개정에 찬성 또는 동의해놓고 이제 와서는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향후 전망도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지난달 27일 남북정상회담 이후 발표된 판문점선언의 국회 비준을 놓고 대치하던 여야가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에 대한 폭행사건 등으로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말았다.

정치권의 통 큰 결단을 촉구한다. 대립은 대립이고 민생은 민생이다. 정쟁 속에서도 국민들을 위해 챙길 법안은 챙길 수 있어야 한다. 4·3 트라우마 환자를 70년간 고통 속에서 살아오게 한 것도 죄송하다.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될 것임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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