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 자녀의 엄마이다. 어느덧 세 아이가 스물을 넘어 같이 살던 집을 떠나 기숙사로 원룸으로 각자 삶터를 찾아 떠났다. 아직은 미혼이지만 곧 결혼도 하리라, 필자가 결혼한 90년대 초에도 자녀를 낳고 돌봄에 어려움이 많은 시절이었다. 그래도 아들 둘을 내리 낳고 딸도 한명은 있어야지 하는 맘으로 셋째를 가졌을 땐 약간 따가운 주변시선도 있었다.

그야말로 7~ 80년대 ‘딸 아들 구별말고 둘 이상 낳지 말자’는 캠페인을 보고 자란 내가 “셋을 낳아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으나 건강한 자녀를 낳게 해주십사 기도하며 또 열달을 보내고 딸을 낳았다. 터울지게 낳다보니 근10년을 아기엄마로 지낼 수 밖에 없었는데 내 생애 가장 힘든지만 행복한 시기였다. 항상 모자란 잠과 시간에 쫓겨 개인적인 문화생활 등은 꿈도 꾸지 못하는 그런 생활, 지금 생각해보니 개인적인 소견으론 연년생으로 낳아 빨리 키웠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있다.

양가 부모님이 농사일을 하셔서 전적으로 아기를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그나마 근처에 사시는 친정이모할머님께 첫째를 맡겨 만3년을 키웠고 둘째와 셋째는 좋은 이웃언니들을 만나 갓난쟁이를 맡기고 출산휴가도 다 못쓰고 이른 출근을 했었다.

요즘은 하도 세상이 각박하다보니 이런 좋은 이웃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가족처럼 아기 돌봐 주실분 구함” 광고지를 관리사무소에 붙이면 바로 연락이 와서 아이를 돌보는 이를 구할 수 있었는데 말이다.

우리나라는 국가적으로 저출산이 사회적 큰 숙제다. 점점 나라 전체가 고령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벌써 육지부 몇 읍면지역에선 지역인구가 점점 줄고 그에 따라 슈퍼 등 생활시설이 없어지고 자생력이 떨어지고 마을공동체가 붕괴되고 있다. 몇 년 지나지 않아 더 많은 소도시 읍면지역이 인구가 줄어 통폐합위기로 다가올 것은 자명한 일이다.

아이는 내 아이가 아닌 우리아이로 키워야 한다. 우리민족은 내가 아닌 우리를 앞에 두고 살던 민족이 아니던가? 이제 그런 ‘우리 공동체’를 살려 우리 동네 아이들이 모두 밝고 건강하게 잘 성장 할 수 있도록 우리 동네에서 우리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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