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징이 唐태종에 조언한 ‘군주인수’
6·13 지방선거 충격적 결과는
성난 민심이 꼴통 보수에 등돌린 것

朴 탄핵에도 여태 정신 못차린 야당
‘완패 功臣’ 살생부까지 나돌아
여당도 기고만장해선 같은 꼴 전락

 

중국의 당(唐) 태종 이세민은 국정의 운영에 있어서 신하의 간언(諫言)을 중하게 여기는 드문 황제였다. 특히 태종은 신하인 위징(魏徵)으로 하여금 국정 뿐 아니라 사생활에 이르기까지 직언을 마다하지 않도록 하여 스스로 경계를 삼았다.

위징은 원래 태종의 사람이 아니라, 황제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다퉜던 형(황태자)의 측근이었다. 이세민(李世民)은 황제에 오르기 전 황태자 편에 서서 자신을 숙청하라고 조언했던 위징을 불러서 문책했다. “네 이놈! 너는 왜 황태자에게 나를 죽이라고 했는가?” 위징은 조금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말했다. “황태자께서 저의 조언을 들었더라면 오늘 이런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같은 자리에 있던 신하들은 위징의 말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당연히 심한 형벌이 가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여기서 당 태종이 얼마나 ‘큰 그릇’이었는지의 면모가 여실히 드러난다. 이세민은 주변의 우려와는 달리 형의 최측근 책사였던 위징을 간의대부(재상)에 중용했다.

중국 최고의 황제로 칭송받는 당 태종은 이렇게 그의 최고의 신하를 받아들인다. 위징은 이후 충성(忠誠)을 다한다. 그러나 그의 ‘충’은 황제를 위한 것이 아니라 백성을 향한 ‘충’이었다. 그 저변엔 장자(莊子)가 말한 “백성이 가장 귀하고 다음이 나라이며 군주는 가볍다”는 철학이 깔려 있었다.

당 태종의 정치 철학을 정리한 정관정요(貞觀政要)를 보면 위징의 간언이 많이 인용되어 있다. 이 가운데 순자(荀子)를 인용한 내용도 나온다. 바로 ‘군주인수 수능재주 역능복주(君舟人水 水能載舟 亦能覆舟)’다. 임금은 배이며 백성은 물이다. 물이 능히 배를 띄우지만, 역으로 능히 배를 뒤엎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군주민수의 민(民)이 인(人)으로 바뀐 것은, 황제의 이름자를 피하는 전통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위징이 죽은 뒤 간언할 충신이 없던 당나라는 세 차례에 걸쳐 감행한 고구려 정벌에 실패했다. 이때 태종은 “위징이 살아 있었다면 전쟁을 하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장탄식을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종은 300번에 이르렀다는 위징의 간언을 받아들여 자신의 잘못을 고치고 백성들을 현명하게 다스려 성군(聖君)으로 역사에 남았다.

‘군주민수’는 지난 2016년 교수신문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혔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성난 민심이 대통령 하야(下野)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고, 결국 대통령 탄핵안 가결까지 이끌어낸 상황을 빗댔다. “박근혜 선장이 지휘하는 배를 분노한 국민이 흔들어 침몰시켰다”는 의미였다.

그런데도 그 패거리들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려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 대참패(大慘敗), 거의 ‘궤멸’ 수준에 이르렀다. 누구를 탓할 계제도 아니다. 선거가 끝난 후 새누리당 후신인 자유한국당은 홍준표 대표가 사퇴하는 등 전열을 가다듬고 있지만 국민들은 냉랭한 편이다.

김성태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번 선거는 국민이 자유한국당을 탄핵한 선거”라며 “당 해체를 통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국민 여러분, 저희들이 잘못했습니다”라며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지만 진정성 있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급기야 시중에는 ‘한국당의 완패를 만든 5대 공신록(功臣錄)’이라는 제목의 살생부(殺生簿)까지 나돌고 있다. 1등 공신의 ‘영예’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그리고 박 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모신 이재만·안봉근·정호성 등 청와대 ‘십상시(十常侍)’가 차지했다. 2등은 이른바 ‘친박(親朴) 8적’이 이름을 올렸다. 서청원·최경환·홍문종·윤상현·이장우·김진태·이정현·조원진 의원이 그 면면이다. 이들의 죄명은 국정농단 동조다.

3위는 홍준표 대표와 비서실장 강효상 의원, ‘이부망천’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정태옥 전 대변인. ‘바른정당 복당파’인 김무성·김성태·장제원 의원 등은 4위에 등극했고, 5등 공신은 ‘한국당 현역 의원 전원’이라는 것이다.

보수(保守)가 다시 살아나려면 바닥 끝까지 내려가 처절하게 망해봐야 한다. 뼈대를 바꾸고 태를 바꾸어 쓰는 환골탈태(換骨奪胎) 없이는 그 어떤 처방도 먹히지 않을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 역시 기고만장해 경거망동해선 안 된다. ‘군주민수’는 특정 정당의 전유물이 아니다. 배를 뜨게 만든 강물이 화가 나면 향후 언제인가 또다시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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