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장비를 둘러싼 납품비리가 아직도 판치고 있다니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다. ‘목숨을 걸고 격무에 시달린다’는 동정론과 이미지마저 스스로 날려 보낸 꼴이 아닐 수 없다.

제주도감사위원회는 20일 소방장비 납품 등 계약비리 사건과 관련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리고 물품대금을 빼돌리거나 묵인하는 등 회계관직 업무를 소홀히 한 27명에 대해 무더기 징계를 요구했다. 이와 함께 제주도 소방안전본부와 각 소방서에 기관 경고를, 당시 소방서장에게는 지휘 및 감독소홀 등의 책임을 물어 경고조치할 것을 주문했다.

감사 결과 이들의 수법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당장 수요가 없는 장비를 허위로 구입하거나, 실제 필요한 것보다 부풀려서 구매를 요청하는 수법을 썼다. 가로챈 돈은 각 소방서의 부족한 관서 경비나 행사비용 등에 사용했다.

이번 감사는 2013년 2월부터 2016년 9월 6일까지에 한해 이뤄졌다. 이 기간 총 40회에 걸쳐 허위의 계약금액 1억4518만원을 납품업체에 지출했다. 이후 실제 납품받은 물품대금 4936만원을 제외한 9582만원 가운데 세금을 제외한 6550만원을 소방장비업체로부터 다시 돌려받아 기관운영 및 부서경비로 시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 같은 ‘불법적 관행’이 특정 소방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도내 전 소방서에 만연되어 있다는 점이다. 소방관서별 계약금액 편취 내역을 보면 △도소방안전본부 3건(1940만원) △제주소방서 14건(2741만원) △서귀포소방서 13건(2504만원) △동부소방서 6건(1145만원) △서부소방서 4건(1251만원) 등이다. 마치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긴 꼴’이 아닐 수 없다.

소방장비 납품비리는 도민 혈세를 도둑질했다는 점에서 ‘도덕적 해이(解弛)’ 차원을 넘어 ‘명백한 중대범죄’다. 그것도 도내 전 소방관서가 연루되어 있는 등 조직적으로 이뤄졌다. 그런데도 경고조치 등 ‘솜방망이 처벌’에 머물고 있으니, 향후 이런 악순환이 계속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소방직을 포함한 공무원은 우리나라 최고의 직장으로 꼽힌다. 공직에서 일어나는 비리는 일반의 비리와는 죄질 면에서 격이 다르며, 때문에 일벌백계(一罰百戒)로 처벌해야 한다. ‘소방장비 납품비리’를 바라보는 도민들의 속은 지금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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