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의 아픔에도 큰 차이
‘생선가게 고양이’와 ‘믿는 도끼’
대한민국 사법부 국민 배신

‘재판거래’ 사상 초유 검찰수사 자초
국민 27%만 신뢰 사실상 사망 선고
‘X묻은 개’ 안되도록 반성 절실

 

배신(背信)은 나쁘다. 상대방의 믿음이나 의리를 저버리는 행위다. 웃으면서 상대방의 등에 칼을 꽂는 것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래서 아프다.

그런데 배신의 아픔도 격이 다르다. 누가 배신하느냐가 관건이다. 이를 테면 ‘생선가게 고양이’와 ‘믿는 도끼’의 차이다. 생선가게를 부탁받은 고양이가 생선을 탐하는 것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다. 그래서 비난을 하면서도 그러려니 한다. 물건을 잃었어도 마음은 다치지 않는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힐 때는 그게 아니다. 배신의 아픔이 배(倍)가 된다. 물질적인 피해와 함께 마음까지 다치기 일쑤다. 신뢰의 붕괴이기 때문이다.

요즘 대한민국에서 믿는 도끼에서 생선가게 고양이로 전락한 ‘집단’이 있다. 사법부(司法府)다. 삼권분립의 한 축으로 독립성을 보장받아야할, 아니 독립성을 확보해야할 사법부가 이른바 ‘재판거래’ 의혹으로 행정부 소속인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검찰 수사의 출발점은 시민단체 등이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한 20건의 고발이다. 여기에 김명수 대법원장의 ‘수사협조’ 결정이 더해졌다.

판사 개인 비리가 아니라 전직 대법원장까지 연루된 사법부의 조직적 범죄의혹에 대한 수사다. 사법 사상 초유의 일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지난 20일 대법원에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 등이 사용한 컴퓨터 하드디스크 제공을 요청하며 수사를 본격화했다.

사건의 발단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다. 사법행정권 남용 특별조사단이 공개한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추진을 위한 BH(청와대)와의 효과적 협상추진 전략’ 문건(2014년 12월 법원행정처 작성)에서 그 ‘검은 거래’의 비밀이 드러난다.

해당 문건에는 “국가적·사회적 파급력이 큰 사건이나 민감한 정치적 사건 등에서 BH와 사전 교감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물밑에서 예측불허의 돌출 판결이 선고되지 않도록 조율하는 역할 수행”이라고 쓰여 있다. 대법원이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청와대와 사전에 판결을 조율해야 한다는 취지로 읽힌다.

양승태 대법원 시절 이렇게 ‘거래’한 사건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댓글 공작 사건, KTX 근로자 복직 사건 등 박근혜 정권 당시 민감하고 난감한 것들이다. 2012년 이명박 정부 당시 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 건설 관련 판결도 ‘정부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협력 사례’로 포함됐다.

이들 모두 증거와 양심에 따른 판결이 아니라 대법원이 사심을 채우기 위해 ‘결론’을 조정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당시에도 ‘사법적 판결’이 아니라 ‘정치적 판단’이란 의혹이 일었다.

당시 대법원은 ‘국방·군사시설사업 실시계획 승인 처분 무효 확인’에서 원고인 강정마을 주민들이 일부 승소했던 1심과 2심을 뒤엎고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KTX 승무원 소송도 1심과 2심에선 ‘해고 무효’ 판결로 승무원들이 이겼었는데 역시 대법원에서 뒤집어졌다.

모두에게 ‘청천벽력’ 같은 판결이었다. 1심과 2심을 이겼으니 ‘대한민국 최고의 사법기관’인 대법원에서도 국민들의 손을 들어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철저히 ‘믿었던’ 대법원에게 배신을 당한 것이다. 사심(私心) 속 ‘재판거래’로 국민들의 뒤통수를 때릴 수도 있다는 개연성을 꿈에라도 생각지 못했다. 법으로 조직의 사리를 채우려한 사법부(私法府)인 셈이다.

이러한 판결로 패소한 사람들의 고통이 시작됐다. 서귀포의 아름다운 강정 앞바다의 생태계 등 마을을 지키기 위해 나섰던 주민들은 전과자가 되고 ‘벌금’의 족쇄가 채워졌다. 280명의 KTX 승무원들은 직장을 잃었고, 누군가는 그 삶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세살박이 딸을 두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이렇게 되면 사법부(死法府)다.

그래서 ‘생선가게 고양이’에 대한 국민들의 판단은 정확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5년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국민 중 ‘사법부를 신뢰한다’는 답변은 27%에 불과했다. OECD 42개국 중 39번째로 적었고 OECD 평균(54%)의 절반 수준이다. 이 정도면 사법부에 대한 ‘사망선고’다. 국민의 절반도 아닌 겨우 4분의1의 신뢰를 받는 기관이 존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사법부(司法府)로 거듭나기 위한 사법부(死法府)의 각성과 처절한 반성이 필요한 이유다.

무엇보다 일벌백계, 철저한 수사를 통해 재판거래 장본인들에 대한 엄정한 처벌이 있어야 한다. X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면서 개도 웃을 일이 대한민국에서 되풀이 돼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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