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유치 확정해 일정 짜놓고도
‘새빨간 거짓말’로 도민 기만
강정주민에 두번이나 대못 박은 꼴

대한민국 해군이 제주 농락·우롱
결코 묵과할 수 없는 행태
도민적 자존심 걸고 ‘본때’ 보여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올해 3월 “군민융합 전략을 실행하는 것은 신시대 강군을 건설하려는 당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라고 강조했다. 군 통수권자인 시 주석의 이런 언급은 ‘중국몽(中國夢) 실현과 강군(强軍) 건설’에는 민간의 지원이 절실한 만큼 군민융합에 더욱 노력하라는 주문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첨단무기와 용감한 병사를 갖췄다 하더라도 국민의 신뢰 없이는 ‘강군’이 될 수가 없다. 이를 알기에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도 그 무엇에 앞서 ‘군민융합’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는 군대가 있다. 현재 ‘국제관함식’의 제주 개최를 둘러싸고 강정마을 주민들과 첨예한 갈등을 벌이고 있는 우리나라 해군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10여년을 끈 제주해군기지 건설 관련 앙금이 채 해소되지 않은 가운데 해군이 또 다른 ‘갈등의 불씨’를 지피고 나선 꼴이다.

발단은 지난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군은 같은 달 23일 강정마을회를 찾아 “갈등해소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오는 10월 제주해군기지에 국제관함식을 유치하겠다”며 설명회를 개최했다. 관함식(觀艦式)이란 국가의 원수 등이 해군 함대를 검열하는 의식을 말한다. 군함의 장비와 전투태세, 장병들의 사기를 살피는 일종의 해상 열병식(閱兵式)이다.

해군 측은 마을주민들이 반대하면 기존대로 부산에서 개최하겠다는 약속도 덧붙였다고 한다. 이에 강정마을회는 총회를 열고 의견을 수렴한 끝에 ‘불가(不可)’ 결정을 내렸다. 이유는 자명했다. “11년간 이어온 갈등과 아픔이 치유되기도 전에 이러한 군사적 행사가 추진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 대다수의 의견이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그렇게 끝날 줄로 믿었지만 큰 오산(誤算)이었다. 해군은 최근까지도 관함식과 관련 목하 ‘고민’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제7기동전단을 지휘하고 있는 최성목 단장(준장)의 지난 10일 기자간담회는 단적인 예다. 그는 이날 “국제관함식이 제주에 유치될 가능성도 있지만 확정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이는 제주도민을 기만(欺瞞)하는 ‘새빨간 거짓말’이란 것이 곧 드러났다. 언론보도를 통해 해군본부 2018 국제관함식기획단과 국군재정관리단이 지난 6월15일 방위사업청 국방전자조달 시스템에 관련 용역 공고 후 사업자 선정까지 마친 것으로 밝혀졌다. 이어 국제관함식 장소로 제주해군기지가 확정됐고, 개최시기도 10월 10일~14일로 이미 정해졌다.

이와 함께 관함식 공식 슬로건을 ‘제주의 바다, 세계평화를 품다’로 정하는가 하면, 30여개국 해군참모총장급 대표단과 외국함정 20~30여척으로 참가 규모 등도 명시됐다. 깜깜이도 이런 깜깜이가 없다. 11년 전 소수 주민들을 회유해 강행했던 해군기지 유치과정과 똑같은 상황으로 강정마을 주민들의 마음에 두 번이나 대못을 박은 꼴이 아닐 수 없다.

해군이 이번 국제관함식 제주 유치로 내건 명분은 지역주민과의 화합(和合)과 상생(相生), 그리고 지역경제 활성화였다. 각종 군사 장비와 시설을 홍보하는 행사가 주민들의 상생·화합과 어떤 연관이 있으며, 10억원의 파급 효과를 내세우며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겠다고 하니 지나가던 소도 웃을 일이다.

더욱이 남북·북미 정상회담 등으로 한반도에 ‘평화 무드’가 조성되는 가운데 ‘평화의 섬’인 제주에서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국제관함식을 거행하는 것은, 시대 상황과도 맞지 않을 뿐더러 제주의 이미지만 크게 훼손시키는 일이다.

이 같은 해군의 이중 플레이에 도민들은 “강정마을의 공동체회복사업을 통해 그간의 아픔과 갈등을 치유하는 시도가 겨우 시작된 상황에서 해군의 행태는 찬물을 끼얹은 격”이라며 강하게 성토하고 있다. 강정마을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에 이어 제주도의회까지 나서 국제관함식 반대 결의안을 채택하는 등 강력 반발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여기서 묻지 않을 수가 없다. 대한민국 해군이 이렇게 제주도민(국민)을 농락하고 우롱(愚弄)해도 되는 것인가. 이는 결코 묵과할 수 없는 문제다. 특히 군사정부도 아닌,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 하에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한데 대해 개탄을 금치 못할 정도다.

이번 건은 강정마을 주민 등 일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도민적 자존심과 연관된 문제다. 해군이 얼마나 제주를 무시했으면 이런 행태를 보이겠는가. 해군이 잘못을 사과하지 않으면 도민들이 총궐기를 해서라도 ‘본때’를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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