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 ‘이별의 타이밍’ 중요
놓치면 추해지고 더욱 험한 꼴까지
그래서 박수 칠 때 떠나라

정상서 내려오기 쉽지 않아
하지만 이별은 필연 조금 빨리한 셈
가고 오고 그렇게 세상은 도는 것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시인 이형기는 ‘낙화’를 이렇게 시작한다. 그리고 그는 “격정적이었던 사랑이 지고 있는 ‘지금’이 가야할 때”라며 떠난다.

애절한 결별의 노래 속에서 ‘떠날 때’를 아는 지혜가 돋보인다. 세상사에 ‘이별의 타이밍(timing)’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별의 때를 놓치면 추해진다. 한시라도 떨어져선 못살 것 같던 연인사이도 ‘사랑이 지고 난 뒤에도’ 한쪽이 매달리며 이별이 좋지 않으면 남남만도 못해진다. 남남에겐 ‘저주’를 퍼붓지는 않는다.

권력도 예외는 아니다. 국가 원수의 자리에 있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등은 좋은 교훈이다. “나 아니면 안된다”는 오만함 등으로 자리에 연연하다 카다피는 시민군의 총에, 후세인은 ‘적국’ 미군의 전범재판을 통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같이한 시간이 길면 이별이 아픈 것처럼 오래 쥐고 있던 권력일수록 놓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목숨과 바꾸어야 했던 권력은 결국 ‘뜬구름’이었다. 지나고 보면 알게 되는 것을 권력에 취해 그때는 몰랐다.

아름다운 이별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이른바 박수칠 때 떠나는 것이다. 정상에서 내려올 때 어찌 아쉬움이 없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들은 알았다. 언제까지 지키고 있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뜬구름처럼 지나갈 것임을. 그래서 과감히 떠났고, 미련 없이 내려놓았다.

지금도 회자되는 사람이 영국 프리미어 리그(EPL)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전 감독이다. 그는 2013년 5월 맨유의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전설’의 퇴장이었다.

퍼거슨은 1986년 부임 이후 27년간 ‘최장수’ 감독으로 맨유를 이끌며 EPL 13회·UEFA 챔피언스리그 2회·잉글랜드 FA컵 5회 등 총 38회 우승이란 금자탑을 쌓았다. 그래서 명장 퍼거슨의 은퇴는 아쉬웠다.

그러나 아름다웠다. 정상에서 과감히 내려왔다. 그는 은퇴하는 시즌에도 맨유의 EPL 우승을 이끌었다. 통산 20회 우승은 영국 최초였다. 그가 팬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못이기는 척 ‘봉사를 위해’ 맨유에 남았다면 하루하루가 전설의 연장이고 들어올리는 트로피는 새로운 역사일 수 있었다.

그런데 떠났다. 퍼거슨은 은퇴 후에도 훌륭한 지도자로, 진정한 어른으로 존경 받는다. 그가 이룩한 업적과 함께 때를 알고 떠난 결단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장 퍼거슨이 빠진 구멍은 컸다. 그가 떠난 후 맨유는 4시즌 동안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몰락’의 길을 걸었다. 새로운 감독 부임 첫해인 2013~14 시즌의 7위는 EPL 출범 이후 구단 역사상 최악의 성적이다.

단골손님처럼 나가던 UEFA 챔피언스리그는 언감생심, 그보다 한 단계 아래의 유로파리그에도 진출하지 못하는 수모도 겪어야 했다. 반면 연고지를 같이하며, 퍼거슨의 맨유 시절 동네북처럼 터지기 일쑤이던 라이벌 맨체스터시티는 승승장구하며 2013~14 시즌과 2017~18 시즌엔 우승(맨유 2위)을 하고 2014~15 시즌 2위(맨유 4위), 2015~16 시즌 4위(맨유 5위), 2016~17시즌 3위(맨유 6위) 등 항상 맨유를 앞서며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 지 보여줬다.

맨유의 시련은 성장통이다. 언젠가 겪어야할 것들이었다. 천하의 명장 퍼거슨도 언제까지 감독을 할 수는 없었다. 워낙 건강체질이라 나이 90을 먹어도 감독을 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인간인지라 언젠가는 자연 앞에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 결국 맨유와의 필연적인 이별을 조금 빨리 아름답게 한 셈이다.

맨유도 이제 반등하고 있다. 이번 시즌엔 우승 문턱까지 다다랐다. 조만간 우승도 할 것 같다. 그렇다. 나가고 들어오고, 내려갔다 올라오고, 태어나고 죽고 이 모든 게 자연의 섭리다.

찢겨진 상처에도 시간이 지나면 새살이 돋아난다. 그리고 이가 없으면 잇몸이다. 실은 잇몸이라고 생각했던 게 이일 수도 있고 꿩 대신 닭이라고 했는데 닭이 꿩보다 못하란 법도 없다. 이렇게 세상은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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