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7기 도정-의정 ‘협치’ 급물살
정치지형 변화로 불가피한 선택
의회 인사·조직 독립권 가시적 조치

높아진 위상 맞게 도의회도 변해야
김 의장 ‘성숙한 모습 보여 줄 것’
그 약속 ‘구두선’에 그치지 말아야

 

 

우리나라 지방자치는 기관분립형 운영체제다. 단체장(집행부)과 지방의회가 다른 기능을 가지면서 견제와 균형을 통해 권력 남용을 막고, 자치행정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식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견제와 균형’보다는 ‘대립과 반목’이, ‘효율성’보다는 ‘비능률’이 더 부각되고 있다.

흔히 집행부와 의회는 지방자치의 양 수레바퀴로 비유된다. 지금까지는 양 바퀴 크기가 달라 수레가 뒤뚱거렸다. 집행부와 지방의회 간 권한 불균형 때문이다. 기관분립형이지만 자치단체장을 효율적으로 견제·감시하기에는 지방의회 권한이 미약하다는 지적이 많다. 또 주민 대표로서 도의원들의 의정활동을 뒷받침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도 미흡하다.

실례로 의회사무처 일반직에 대한 인사권은 단체장이 갖고 있다. 사무처 직원들이 도의원들을 도와 의정활동을 생산적으로 추진해 나가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에 전국 지방의회가 인사·조직의 독립성 강화와 함께 전문성 제고를 위한 의원보좌관제 도입 등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으나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제주에서 집행부-의회 관계에 변화가 일고 있다. 기관분립형의 부작용에 대한 반성적 고려에서 ‘협치형 지방자치’가 모색되고 있다. 제주도와 도의회는 제주형 협치를 위한 ‘상설정책협의회’를 운영하기로 합의했다.

협치는 지난 도정에서도 주창했지만 유야무야 됐다. 하지만 이번은 사정이 다르다. 6·13지방선거 결과 더불어민주당이 도의회를 장악, 여당 도의원들의 협조 없이는 원활한 도정 수행이 어려운 상황이다. 협치는 민선7기 원 도정의 불가피한 선택이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정치 지형의 변화에 따라 도정-의정 협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원 지사는 “의회의 견제 기능을 전제로 협치와 연정을 확대시켜 나가겠다”며 “의회와 함께 논의하고 결정된 것을 조례에 담고 도민들이 관심을 갖는 현안은 상설기구를 통해 협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상설정책협의회를 위한 공동 선언문에는 △지방분권 개헌, 도민의 자기결정권 강화 등에 대한 노력 △의회 독립성 및 자율성 확보를 위한 인사·조직권의 신속한 이양 및 관련 제도개선 노력 △지방행정의 합리적·효율적 수행 및 공정성과 투명성 확보를 위한 도와 의회간 협력 방안 등 3가지 사항이 담겼다.

도의회 인사권 독립과 관련해서는 구체적 결실도 있었다. 도의회는 민원홍보담당관(4급)과 의장 직속 정책상황실을 신설하고, 17명을 증원하는 내용의 조직개편안을 마련했다. 제주도의회가 지방자치 부활 후 처음으로 독자적인 조직개편안을 내놓으며 인사권과 조직권 독립의 첫발을 내딛었다.

신임 행정시장도 민주당 제주도당위원장 출신 인사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협치를 염두에 두고 다수당을 배려한 측면이 크다. 원 지사는 앞서 의회에 행정시장 추천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래저래 제주도의회 위상이 높아졌다. 하기에 따라서는 도의회가 도민들 신뢰를 받는 명실상부한 ‘민의(民意)의 전당’으로 자리매김 할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이를 위해서는 도의회도 변해야 한다. 무엇보다 의사결정 구조를 민주화해야 한다. 말발 센 소수가 전체 의사를 좌지우지하는 구태는 없어야 한다. 의원 간 활발한 토론으로 민의를 만들어 가는 성숙한 의회가 돼야 한다.

집행부와의 관계에서도 협력만 해서도, 그렇다고 견제만 해서도 안 된다. 협력과 견제를 조화롭게 구사하면서 지역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도의회가 해야 한다. 협치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협치는 타협과 양보를 바탕으로 고도의 정치력을 요한다. 잘하면 지방정치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수 있지만, 잘못하면 ‘협잡’에 그칠 수 있다. 협치 국면에서 도의회가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태석 의장은 지난 13일 상설정책협의회를 위한 공동 선언문 발표 자리에서 “앞으로 도의회가 인사 조직 및 자율적인 진행을 할 수 있게 됐다. 이를 계기로 보다 성숙한 의회의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성숙한 의회 모습’은 도민 누구나 갈망하는 것이다. 이 약속이 구두선(口頭禪)에 그치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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