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관함식 개최 둘러싼 주민투표
반대에서 찬성으로 급선회
실리 챙겼다지만 또다른 갈등 소지

청와대 등 총출동 기존여론 뒤집어
“和合 위한 관함식” 언어도단
도의회 결의안 등 ‘닭 쫓던 개’格

 

지난 28일 강정커뮤니티센터에서는 강정마을 주민투표가 진행됐다. ‘대통령의 유감표명과 공동체회복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한 국제관함식 동의 여부’를 묻는 투표였다.

개표 결과 투표 참가자 449명 가운데 동의(찬성) 385표, 부동의(반대) 62표, 무효 2표로 집계됐다. 대다수의 마을주민이 관함식 개최를 찬성하고 나선 것이다. 이는 지난 3월 마을 임시총회서의 ‘반대’ 결의를 사실상 뒤집은 것. 이에 따라 오는 10월 제주해군기지에서의 ‘2018 국제관함식’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개표가 끝난 뒤 강희봉 강정마을회장은 “주민들이 그동안 요구해온 명예회복 및 진상규명과 주민공동체사업을 문재인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해결하겠다고 의지를 보인 것이 주민들을 찬성으로 움직이게 한 것 같다”고 말했다. 단, 문재인 대통령이 관함식에 참석하지 않는 등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자신부터 다시 반대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강정마을 주민들의 결정은 ‘명분(名分)보다 실리(實利)’를 챙긴 것으로 보인다. 그 저변엔 10여년 이상 계속되고 있는 정부(해군)와의 싸움에 이골이 난데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일 터다. 이런 강정 주민들의 마음은 미루어 쉽게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이번 결정으로 인해 근원적인 문제가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강정마을 주민들이 제주해군기지 반대 투쟁에 나선 것은 절차상의 문제도 있었지만, ‘평화의 섬(마을)에 웬 해군기지냐?’는 물음이 그 바탕에 깔려 있었다. 이후 주민들의 반대 의견은 정부로부터 외면 받거나 묵살됐다.

이런 와중에 마을의 상징인 ‘구럼비 바위’가 공권력(公權力)에 의해 폭파되자 주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고, 이는 전면적인 반대 투쟁으로 이어졌다. 숱한 주민들이 범법자로 몰렸고 마을 전체가 구상금(求償金) 청구 등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리고 10여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새 ‘강정=평화’란 등식이 자리잡았다.

찬반 주민 간 지난 세월의 갈등과 반목을 그나마 풀고 잠잠하던 강정마을에 또다시 풍파(風波)가 몰아친 것은 올해 3월이다. 해군이 강정마을을 찾아 그간 부산에서 10년 주기로 열던 국제관함식을 2018년(10월)에는 제주해군기지에 유치해서 개최하겠다는 주민설명회가 기폭제 역할을 했다.

관함식(觀艦式)은 국가의 원수 등이 해군 함대를 검열하는 일종의 해상 열병식(閱兵式)을 말한다. 전 세계의 군함들이 화력을 뽐내고 군사력을 과시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주민들이 강력 반발했음은 물론이다. 이에 해군은 주민들이 반대하면 기존처럼 부산에서 개최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강정마을회가 지난 3월 30일 임시총회를 열고 국제관함식 유치 의견을 상정해 반대 결정을 내린 뒤 해군에 통보한 것은 그에 대한 답변이었다.

하지만 해군은 집요했다. 당초 주민과의 약속을 뒤집고 겉으론 의견수렴을 하는 체 하며 물밑에선 일방적으로 관함식 유치 등 모든 일정을 확정하고 기정사실화 해버렸다. ‘새빨간 거짓말’을 일삼으며 대놓고 제주도민들을 우롱하고 기만한 것이다.

7월 들어 제11대 제주도의회가 공식 개원하면서 이 문제는 도의회의 핫이슈로 대두됐다. 이상봉 의원 등이 주도한 ‘제주해군기지 국제관함식 개최 반대 촉구 결의안’에는 도의원 43명 전원이 서명했다. 도의원들은 결의문을 통해 “해군은 갈등 해소 등을 명분으로 관함식 개최를 기정사실화하면서 오히려 강정마을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다”며 “해군이 당초 제시한 지역주민과의 상생(相生)과 화합(和合)이 목적이라면 마을의 결정에 동의해 갈등과 혼란을 부추기는 국제관함식 개최 강행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최근 이용선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제주를 방문 김태석 도의회 의장 등과 면담한 이후 결의안 상정은 전격 보류됐다. 그리고 이어진 강정마을 2차 주민투표에선 결국 ‘찬성’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강정의 갈등과 아픔을 지켜보며 지지를 보냈던 숱한 도민과 시민사회단체, 도의원 등은 ‘닭 쫓던 개 지붕만 쳐다보는 격’이 되고 말았다.

국제관함식의 제1목적이 ‘강정의 화합’이라는 정부의 설명은 언어도단(言語道斷)이자 일고의 가치도 없다. 이번 재투표에 의해 내려진 결정은 갈등의 매듭이 아니라, 또 다른 갈등과 분열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다. 앞으로 ‘강정’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걱정이 앞서는 것은, 비단 필자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저작권자 © 제주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