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고 탈 많은 ‘재밋섬건물’ 매입
재단 이사들 거수기 전락
170억 넘는 사업 일사천리 결정

특정인 미술작품 집중구입 계획
도립미술관도 구설수 올라
한쪽 몰린 ‘문화권력’ 폐단 드러나

 

본지 13일자에는 두 건의 묵직한 도내 문화예술 관련기사가 실렸다. 내용을 보면 둘 다 ‘어두운 그늘’을 다루고 있다. 하나는 ‘제주문화예술재단 어떻게 ‘괴물’이 되고 있나’ 시리즈의 제2탄 격이다. 또 다른 하나는 제주도립미술관이 특정인 작품을 집중 구입키로 계획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기사다.

괴물 시리즈 제2탄의 주제는 ‘거수기로 전락한 이사회’였다. 리모델링비 포함 무려 173억원의 혈세(血稅)가 투입되는 ‘재밋섬 건물’(옛 아카데미영화관) 매입 추진 과정에서 이사회의 역할이 유명무실했다는 지적이다. 본지 기자가 비공개 회의록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다.

문제가 된 것은 지난 5월 17일 열린 임시이사회였다. 이날 회의엔 재적이사 15명 중 10명이 참석했다. 그리고 안건 가운데 ‘기본재산(제주문예재단 육성기금)을 활용한 건물 매입 건’이 가장 먼저 다뤄졌다.

박경훈 제주문예재단 이사장은 이날 “관련조례를 만들 당시에는 기금의 이자를 경상비로 쓰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하지만 300억원 목표 달성(2020년까지)이 어렵고 은행 이자가 작아 기금을 다른 방식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건물 매입 당위성을 설명했다. 이후 회의는 일사천리(一瀉千里)로 진행됐다.

도내 문화예술단체 회장인 A이사는 공간이 많이 생기는 것은 예술인들의 입장에서 좋은 것이라며, 예총과 민예총의 무상 임대가 문제없이 진행됐으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B이사는 매입과 매각은 시기가 있다며 민첩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고, C이사는 시민과 소통하는 공간을 강조하면서도 기왕이면 빠르게 (건물을) 확보할 것을 주문했다.

이 자리엔 당연직 이사인 김홍두 제주도 문화체육대외협력국장도 참석했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사회에 앞서 열린 주민설명회 분위기를 묻는 질문에 “모 단체를 제외하고는 찬성하는 분위기였다”며 별 문제가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이에 고무된 듯 D이사는 “도청 국장과 박경훈 이사장 임기가 끝나면 리모델링 비용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며 신속하게 TF를 구성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 누구 하나 건물 매입에 대한 예산 대비 효용이나 원도심 주차 문제에 따른 이용 불편, 도민과의 소통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다. 마치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재밋섬 매입’ 안건은 아무런 이의 제기 없이 그렇게 원안 가결됐다.

이를 바탕으로 재단은 지난 6월 19일 이사들에게 재밋섬 건물 매입을 위한 특별회계 세입세출예산안 안건을 발송했다. 2차 서면의결을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이 또한 ‘졸속(拙速)’ 그 자체였다.

재단이 건물을 매입하는 입장임에도 건물 양도세 1억원과 함께 TF 회의수당과는 별도로 워킹그룹 3명에 250만원씩 12개월간 지급토록 했다. 또 인건비 1억8000만원과 여비 2000만원 등이 세출예산으로 잡혔다. 도민들의 혈세는 그야말로 ‘눈먼돈’이었다. 그럼에도 공무원을 포함 이사 전원이 찬성에 기명날인한 문서를 보내왔다.

그리고 원희룡 제주지사는 6·13 지방선거 바로 다음날인 14일 이 사업을 승인했다. 그 누구를 믿어야할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그들만의 밀실’에서 이뤄진 것이다.

제주도립미술관의 행태도 구설(口舌)에 올랐다. ‘비엔날레 행사’로 경찰의 수사까지 받고 있는 도립미술관은 올해 상반기 제주작가 미술작품 구입 리스트를 작성하며 전체 65점 중 70%가 넘는 48점을 특정인의 작품으로 구성한 것이 뒤늦게 드러났다.

그 특정인은 바로 제주문예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던 박경훈 화가였다. 비록 작품수집추천위의 1차 심의에서 제동이 결렸지만, 화가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도립미술관의 ‘파격적인 우대’에 미술계의 곱지 않은 시각과 함께 말들이 무성하다.

언제부터인가 ‘문화권력(文化權力)’이라는 말이 회자됐다. 그 어떤 권력이라도 집중 경향을 보이면 각종 폐단이 발생하는 것은 고금(古今)의 진리다. 문화예술도 다양성이 있어야 한다. 최근 들어 도내 문화예술계의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소식을 접하면서 우울함을 느끼는 것은 비단 필자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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