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어둔 미술전 쪽지 11년만에 개봉
내 이름도 거기에 과거 기억 ‘새록’
그동안 제주도 급변 인구 20% 늘고

道살림 두 배 증가 예산 5조원 돌파
아파트 3억 호가·빈부 확대 그림자도
화려한 구호 불구 서민 삶은 ‘제자리’

 

제주가 태풍 솔릭의 영향권에 접어들던 지난 22일, 한 미술인으로부터 행사를 알리는 카톡이 왔다. 미술동인 에뜨왈의 타임캡슐전. 1일 전시를 오픈한다는 소식이었다. 보내온 도록 한편에 이름이 빼곡했다. 누굴까. 자세히 보니, 2007년 그룹 전 당시 방문객들로부터 받은 쪽지를 항아리에 묻어두었다가 올해 개봉했단다. 그 안에 내 이름이 있었다.

전시장 한쪽에서 미래의 나에게 쪽지를 쓰던 때, 나는 20대 후반의 어린 기자였다. 그 해 태풍 나리가 제주를 기습했다. 한동안 지면에 복개 하천의 문제점에 대한 보도가 줄기차게 실렸다. 당시 나는 문화부 기자였는데, 제주영상위원회가 새롭게 출범해 제주의 영상산업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취재하던 기억이 선명하다.

강산이 변한다는 그 시간동안 내게는 남편과 아이가 생겼다. 몸집이 넉넉해졌고, 후배들이 많아지고, 몇 년에 한 번 찾아오는 선거쯤은 즐겁게 해치울 만큼 나름의 노하우도 쌓였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지난 10년 몸집이 커진 건 나만이 아니었다. 지금 내가 두 발을 디디고 살고 있는 제주도는 주민등록상 인구가 2007년 57만 명에서 올해 68만 명을 넘어섰다. 전체 인구의 20%가 늘어난 셈이다. 70여년전, 일본으로 건너갔다 해방 후 고향으로 돌아온 도민 수보다 더 큰 증가폭이라 하니 어느 정도인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섬에 사람이 많아지니 부동산 거래가 늘고 지가가 올랐다. 대단지 아파트도 크게 늘었다. 부동산 호황은 행정의 금고도 두둑하게 만들었다. 지방세가 늘면서 2조 3000억 원이던 제주도 살림은 11년 만에 5조 원을 돌파했다. 5000억 원이던 교육살림은 올해 본예산이 1조원을 넘어섰다. 한층 풍성해진 예산은 각종 복지정책의 확대로 이어져, 이미 제주는 사실상 무상 공교육 시대로 접어들었다.

지난 10년 제주의 이 같은 변화는 낯선 그늘도 드리웠다. 1억 원 후반이면 살 수 있던 평범한 동네의 30평 아파트는 이제 작게 잡아도 3억 원을 호가한다. 대단지 아파트의 엘리베이터에는 “아파트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베란다 이불 널기를 삼가 달라”는 문구가 심심치 않게 보이고, 넉넉하지 않은 가정의 자식들은 자신의 급여로는 도무지 집을 살 수 없을 것이라며 결혼을 포기하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산다.

이 같은 일상의 고민은 안타깝게도 통계로 증명된다. 고용노동부가 분석한 제주 근로자 1인당 월평균 임금은 246만원으로 전국에서 가장 낮다. 2008년에도 같은 부처의 조사에서 제주 근로자의 월평균 급여는 166만원으로 전국 꼴찌였다. 제주지역 평균주택가격은 매년 전국 최고 상승률을 보여온 가운데 지난 2월 한국감정원 자료에서도 2억7389만원으로 인구 급증 도시인 세종시에 이어 두번째로 조사됐다. 부산, 대구, 울산 등 제주보다 근로자 임금이 높은 대도시보다도 집값이 비싼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제주지역은 주택구입부담지수가 서울에 이어 전국 두 번째 지역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다.

지난 10년 제주의 구호는 화려했다. 2001년 제주개발계획이 종료되면서 정부는 사람·물자·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해 동북아의 중심이 되겠다는 국제자유도시의 기치를 출발시켰고, 고도의 자치권을 이관해 지방자치를 실현하는 특별자치도가 국제자유도시를 완성하기 위한 제도적 실천 전략으로 채택됐다. 그 시간, 행정은 ‘동북아의 허브’ ‘아시아의 중심’ 등 온갖 미사여구를 쏟아냈는데 글쎄, 우리의 삶은 뭐가 달라진걸까.

오래 전 사람들은 처음 만나면 “집이 어디꽈?”라며 고향을 인사처럼 물었다. 지금 사람들은 같은 질문에 아파트 이름으로 답한다. 혹시 제주 섬의 빈부 차가 구획화 되고 또렷해지는 신호탄은 아닐까.

어쨌거나 나는 오는 1일 시작되는 에뜨왈 회원전 개막식에 아이를 데리고 가볼 참이다. 시간은 계속 흘러 이제 9월이고, 우리는 추석 준비로 곧 바빠질 것이다. 하지만 제주에 사는, 제주로 오는 도민들의 마음이 가족의 품 만으로 한가위처럼 풍성해질 수 있을까. 지난 10년 ‘국제자유도시’를 중심에 두고 진행돼 온 지사의 선택과 온갖 행정 행위들이 도민들의 오늘을 어느 만큼 행복하게 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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