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정신적 지주’였던 푸미콘
美 ‘보수의 양심이자 상징’ 매케인
죽어서 역사의 英雄 각인

文 대통령 “적폐청산 시대의 소명”
경제파탄 우려 속 최우선 과제로
‘과유불급’ 의미 되새겨야

 

# 태국(泰國)의 정신적 지주였던 푸미콘 아둔야뎃 국왕이 2016년 10월 서거하자 나라 전체가 깊은 슬픔에 잠겼다. 순식간에 국왕 서거를 애도하는 검은색이 전국을 뒤덮었다. 이를 두고 외신은 ‘색(色)을 잃은 태국’으로 전하기도 했다.

푸미콘 국왕은 세계 최장 기록인 70년간 재위하며 태국 국민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예전의 절대군주와는 다른 입헌 군주제도의 왕이었지만 명실상부한 국민들의 ‘정신적 아버지’나 다름없었다.

태국의 근현대사 역시 혼란의 연속이었다. 푸미콘 국왕 시절에도 무려 19차례의 쿠데타와 20회의 개헌(改憲)이 있었다. 그 격변기마다 국왕은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며 나라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것을 막아왔다.

1973년 군부가 민주화 시위에 나선 학생들을 향해 발포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푸미콘은 굳게 닫혔던 궁전 문을 개방해 학생들을 보호했다. 민주화 시위로 희생자가 발생하자 국왕은 몸소 거리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 비통한 모습이 공개되면서 국민들은 감동했고 이는 태국 민주화의 근간이 되기도 했다. 특히 푸미콘 국왕은 민중의 고충을 직접 체험하고 백성 편에 서서 아량과 자비를 베푼 현군(賢君)이었다.

물론 푸미콘 또한 잘못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십 수번 반복된 군부 쿠데타를 종종 용인한 부분은 정치적 오점으로 비판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미콘 국왕은 태국 국민들에게 올바른 지도자의 전형으로 깊이 각인되어 있다.

# 미국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지난달 25일 뇌종양 투병 끝에 타계했다. 여야를 망라한 정치권은 물론 일반 국민들까지 ‘보수(保守)의 양심’이었던 고인을 한마음으로 애도했다.

매케인은 베트남전 영웅이자 때론 ‘매버릭(독불장군)’으로 불렸다. 그러나 사망 이후 ‘그는 국가에 봉사했다(He served his country)’라는 묘비명처럼, 분열과 갈등의 미국을 하나로 모으는 기폭제 역할을 하면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전투기 조종사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가 비행기가 추락하며 매케인은 5년간 포로생활을 하기도 했다. 1981년 퇴역하고 정치에 뛰어든 존 매케인은 자신의 이익보다는 오로지 ‘국가를 위한 일념’으로 헌신했다. 조지 W 부시 정부와 의견차로 갈등하기도 했으나,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에 대한 미군 증파를 의회에 요청했을 땐 모두가 외면한 부시를 지지하고 나섰다. “조국이 전쟁에서 지는 것보다 내가 선거에서 지는 편이 더 낫다”는 게 그의 신조였다.

매케인은 당적이나 개인적인 감정에 구애받지 않고 옳은 의견엔 전적으로 힘을 보탰다. 그는 2008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인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 패한 쓰라린 경험이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오바마케어(전국민건강보험법)를 폐지하려고 하자, 뇌종양 수술 후유증에도 반대표를 던지기 위해 의회에 복귀하는 투혼을 발휘하기도 했다.

매케인은 배짱과 열정, 도덕적 신념을 따르는 확고부동한 태도로 일관했다. 여야를 떠난 정치권과 언론이 ‘자랑스러운 미국인’으로 살다간 그에게 깊은 애도와 함께 칭송을 아끼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매케인은 죽어서 다시 한 번 ‘영웅(英雄)’이 됐다.

# 문재인 대통령이 9월 1일 열린 ‘당정청 전원회의’에서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강력하고 지속적인 적폐청산(積幣淸算)으로 불의의 시대를 밀어내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 시대의 소명”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지 벌써 15개월이 지났다. 대통령이 언급한 것처럼 대한민국은 지금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 일각에서 ‘경제파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적폐청산’이 아직도 최우선 과제인가에 대해선 의문의 여지가 많다.

옛 말에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다. 정도가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뜻이다. 적폐청산도 좋지만 이제 미래를 향해 내달려야 할 때다. 과연 대한민국호(號)가 현재 제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정상적인 길로 나아가고 있는지 걱정이 앞선다.

저작권자 © 제주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