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 없는 헌정사상 초유 재판에 검찰 혐의 입증 난항 예상
통상적 관례 깨고 1~2회 심리만 거쳐 선고 연내 판결 가능성

제주 4·3 수형인에 대한 재심 본안소송 기일이 내달 29일로 확정된 가운데, 4·3 70주년을 맞은 연내에 판결이 나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재심 사건의 경우 본안소송이 나오더라도 여러차례의 공판 기일을 거쳐 선고가 이뤄지는 것이 통상적이다.

간첩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했던 오재선(78)씨는 지난 8월 재심을 통해 32년만에 무죄를 선고받아 누명을 벗었지만 재심 결정 이후 10여차례의 공판을 거쳤다. 이는 검찰측이 증인 신청을 수차례에 걸쳐 요청한데 따른 것으로, 2016년 12월 재심개시 이후 선고가 이뤄지기까지 8개월 이상 소요됐다.

그러나 4·3 수형인에 대한 본안 소송의 경우 오씨의 재심 재판과 달리 즉시항고도 포기한데다, 증인 대부분이 사망하거나 고령이기 때문에 증인 신청도 어려운 상태다.

특히 이번 사건의 경우 헌정사상 판결문이 없는 초유의 재판이다. 재판부는 형사 소송법상 공소사실의 특정과 이에 대한 입증 책임은 수형인이 아닌, 검찰(국가)에 있다고 강조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이 항고를 포기한 것도, 혐의를 입증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검찰은 판결문 등 공소사실을 토대로 심문해야 하는데 판결문이 없어 어려울 것이다. 검찰 입장에서는 여러가지로 부담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재심 사건의 경우 수차례 공판 기일을 갖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번 재판은 판결문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례적으로 1~2회의 심리만 거쳐 선고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법원도 4·3 당시 상황에서 불법 구금 내지 가혹행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어, 본안 재판에서 무죄 판결이 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법조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4·3 수형인들은 1948년과 1949년 제주도에서 이뤄진 군법회의가 정상적인 재판이 아닌 불법적으로 이뤄졌고, 억울하게 수형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1948년 군법회의(12월 3일부터 27일까지 총 12차례)는 형법 제77조 내란죄를 이유로 871명에 대해 유죄판결을 선고했고, 1949년 고등군법회의(6월 23일부터 7월 7일까지 총 10차례)는 국방경비법 제32조(적에 대한 구원통신연락 또는 방조) 및 33조(간첩) 위반을 이유로 1659명에 대해 유죄판결을 선고했다.
 
군당국이 1948년 군법회의와 1949년 군법회의에서 헌법 및 법률이 정한 재판절차도 없이 ‘판결’의 형식으로 희생자를 처형하거나 형무소에 수감하는 등의 국가폭력을 자행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대목이다. 

간첩 누명을 벗었던 오재선씨의 재심 재판이 무죄가 선고된 것도 “당시 구금 상태에서 폭행과 고문 등 가혹행위 끝에 허위자백을 했다. 형법상 불법체포, 감금 죄 등에 해당된다”는 주장을 법원이 인정한데 따른 것이다.

법원에서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이 ‘판례’인 만큼 무죄 판결이 예상되는 가운데, 백발노인이 된 수형인들이 올해에 평생의 한(恨)을 풀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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