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톱 10’ 알리바바 그룹 회장
1년 후 경영일선서 물러나
향후 영어교사·교육사업에 매진

일각선 中 정부와 불화설 등 제기
실체 떠나 ‘勇斷’ 높이 사야
“왜 우리에겐 이런 인물 없나…”

 

조병화 시인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의자’란 시가 떠오른다. 시는 이렇게 시작된다.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드리지요.”

‘작은 거인(巨人)’으로 일컬어지는 마윈(馬云) 알리바바 그룹 회장이 2019년 9월 10일 경영일선에서 물러난다고 발표했다. 내년 9월 10일은 그의 55세 생일이자, 중국 항저우(杭州)의 한 아파트에서 알리바바를 창업한지 20년이 되는 날이다. 마윈은 지난 10일 임직원에게 보낸 메일을 통해 “알리바바는 한 번도 마윈에 속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윈은 영원히 알리바바에 속할 것”이라고 내심을 토로했다.

마윈 회장은 그야말로 ‘기적(奇蹟)’을 일궈낸 사나이다. 1999년 당시 자본금 50만위안(약 8000만원)으로 알리바바를 창업해 현재 시가총액 4200억달러(약 473조7600억원)란 거대 인터넷 상거래 기업으로 키웠다. 이는 우리나라 최대기업인 삼성전자 시가총액 292조4000억원을 훨씬 웃도는 규모다.

마윈 회장의 인생 역정은 드라마 그 자체다. 그는 1964년 저장성(浙江省) 항저우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가 국민당 시절 지방의 치안유지 간부를 맡았던 이력으로 인해 ‘반혁명분자’로 몰려 집안은 생계를 꾸리기도 힘들 정도였다. 이런 관계로 마윈도 어릴 때부터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았다.

어린 그에게 유일한 즐거움을 준 것은 바로 무협지였다. 특히 진융(金庸)의 작품을 즐겨 읽었다고 한다. 그는 언젠가 “무협소설을 통해 가상의 세계를 탐미한 것이 나에게 사유의 날개를 달아주었다”고 말한 바 있다.

50을 넘긴 마윈은 지금도 열혈 무협 마니아다. 알리바바 본사 회의실은 물론 그의 집무실 이름을 진융의 무협소설에 나오는 도화도(桃花島)로 명명하는가 하면, ‘소오강호(笑傲江湖)’에 등장하는 펑칭양(風淸揚)을 자신의 별호로 삼았다고 한다. 한때 무협 마니아였던 필자가 보기에도 실소(失笑)가 나올 정도다.

마윈 회장은 알리바바를 오늘날 중국과 아시아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대학도 3수 끝에 정원(영문과) 미달로 겨우 들어갔다. 취업도 서른 번 넘게 거절당했다고 한다. 이 같은 시련과 좌절은 훗날 큰 밑거름이 됐다.

지난 1995년 미국 시애틀에서 처음 인터넷을 접하면서 마윈의 사업가적 기질이 드러난다. 인터넷과 컴퓨터에 사실상 문외한(門外漢)이었던 그는, 앞으로 인터넷이 인류를 변화시키고 사람들의 생활 구석구석을 바꾸어놓을 것이라고 직감으로 눈치 챘다. 이는 4년 후 알리바바 창업으로 이어진다.

마윈의 경영철학은 ‘역발상(逆發想) 전략’과 함께 상대방에 대한 신뢰, 그리고 상생이었다. 그것은 “90%가 찬성하는 방안이 있다면 나는 반드시 그것을 쓰레기통에 버린다. 많은 사람들이 좋다는 계획이라면 분명 많은 사람들이 시도했을 것이고 그 기회는 우리 것이 아니다” “돈을 벌고 싶다면 먼저 다른 사람이 돈을 벌 수 있도록 도와라” 등 그의 어록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마윈 회장은 이 같은 역발상 전략 등으로 알리바바를 19년 만에 ‘글로벌 톱 10’이란 초대형 기업으로 키웠다. 그리고 한창 나이인 50대임에도 1년 후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범인(凡人)으로선 결코 쉽지 않은 결단이다.

알리바바가 공개한 회장의 새 명함은 ‘마윈 선생님(老師)’이다. 마윈도 이달 7일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교육사업에 전념할 것이며, 은퇴는 한 시대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말했다. 불룸버그TV 인터뷰에선 ”나는 빌 게이츠에게서 배울 게 많다“며 ”곧 교사(영어)로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었다. 실제 그는 2014년 마윈재단을 설립해 중국의 농촌 교육환경 개선사업을 활발하게 펼쳐왔다.

일각에선 마윈 회장의 은퇴 선언을 놓고 중국 정부와의 불화설(不和說) 및 언젠가는 다시 경영에 복귀할 것이라고 점치기도 한다. 그것은 두고 볼 일이다. 이번 ‘은퇴 선언’ 소식을 접하면서 왜 우리에겐 마윈과 같은 인물이 없는가 하는 아쉬움을 느끼는 것은, 비단 필자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조병화의 시 ‘의자’는 이렇게 끝난다. “지금 어디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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