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산의 아픔을 간직한 채 실향민(失鄕民)으로 제주에서 살아가는 이북도민만 2만3000여명에 이른다. 실향 2세인 백정현(63) 제주황해도민회 명예회장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우리는 벌초를 할 곳이 없어서 추석 명절이 다가오면 부모님은 고향땅에 두고 오신 할아버지와 할머니 생각에 연신 눈물만 흘리셨다….” 백정현 회장의 어릴 적 회고다. 이젠 돌아가신 그의 아버지 고향은 황해도 송화군 봉래면이다. 한국전쟁 당시 부모님과 작은 아버지, 고모들이 인민군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와 제주에 정착했다고 한다. 북녘 땅에 두고 온 가족과 고향산천을 그리워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이산가족 상봉이 한창이던 때 북녘고향에 계신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이산가족 신청도 했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백 회장은 “지금까지 이산가족이 100명씩 만났는데 현재 남아있는 인원만 해도 5만6000여명이다. 100명씩 상봉을 해서는 앞으로 560년이 걸린다”며 “이산가족의 한(恨)을 풀어주기엔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는 향후 남북교류 활성화에 대비해 관련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제주에 ‘통일동산’ 건립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이산(離散)의 아픔은 실향민뿐 아니라 새터민도 마찬가지다. 이북5도 사무실에서 만난 새터민 박나정(42·여)씨도 “자유로운 왕래가 되고 통일이 되면 북녘 땅에 있는 엄마 산소에 가장 먼저 가보고 싶다”며 연신 눈시울을 붉혔다.

함경북도 회령시가 고향인 박씨는 지난 2006년 중국을 거쳐 탈북한 후 대한민국 제주도에 정착했다. 2004년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막내 동생을 한국에 먼저 보내고, 2006년 9월 둘째 동생과 함께 배를 타고 한국으로 어렵게 들어왔다. 예술단 공연을 하러 왔다 제주도에 반해 제2고향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는 “대부분의 새터민들이 명절이 되면 갈 곳이 없는 게 사실”이라며 “저희는 아버지와 동생들이 함께 제주도에 살고 있지만, 혼자 남한으로 내려온 새터민들은 얼마나 속상하고 외로울까 하는 마음도 든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세 번째 열린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 박씨는 “통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당장은 힘들 것”이라며 “먼저 북한과 자유로운 왕래가 이뤄져서 북한에 있는 친구들을 만나는 꿈을 꾸고 있다”고 밝혔다. 이산가족의 슬픔은 우리의 아픈 역사이기도 하다. 이들을 보듬고 안아주며 하루속히 통일(統一)이 이뤄지길 함께 기원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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