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이 시작된 것은 지난 1948년이었다. 열여섯이던 그의 집에 토벌대가 들이닥쳤고, 뼈도 덜 여문 형제들의 몸 위로 빨간 피가 솟구쳤다. 그 이후 이유도 모르고 끌려간 낯선 도시의 형무소에서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7년형을 선고받았다. 기구한 운명의 시작이었다.

제주4·3 생존수형인 18명이 이달 3일 제주지방법원으로부터 재심(再審) 개시 결정을 받았다. 검찰이 즉시항고를 포기하면서 4·3수형인들은 정식 재판(10월29일 첫 기일)을 받게 됐다. 여기까지 오는데 무려 7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청구인 가운데 한 분인 양근방 옹(86·제주시 애월읍 고성리)의 지난 삶은 파란만장(波瀾萬丈) 그 자체였다. 영문도 모른 채 형무소에 갇혔다가 군사재판으로 7년형 선고→6·25전쟁→석방→또다시 감옥→야산에서의 총살 때 구사일생 탈출→다시 붙잡힌 후 광주와 목포형무소 복역→6년여 만에 사면 석방.

그러나 이게 모진 삶의 끝은 아니었다. 그렇게 그리던 고향에선 ‘빨갱이’란 낙인(烙印) 때문에 살 수가 없어 도망치듯이 육지로 갔다. 다시 제주로 돌아온 것은 1990년 즈음. 그의 나이 60이었다.

양 할아버지는 “어릴 적 밥 먹으려던 가족을 토벌대가 총으로 쏜 것이 가장 억울하다”고 했다. 죄 없이 총을 세 번씩이나 맞고, 감옥에 가서 6년을 살았던 것. 어렵게 낳은 6남매를 제대로 키우지 못한 것 등이 아직도 깊은 한으로 남았다.

하지만 양 어르신은 재심 개시 결정을 받고 4·3사건 이후 가장 편안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70년 천추의 한(恨)’을 풀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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