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전 방불케 하는 도로 확장·신설
자동차 증가율 월등 교통난 여전
수요관리 우선이지만 눈앞 문제 ‘급급’

선진국 장래 도로 남아돌 것 예상 준비
도로, 낭만적인 ‘힐링 공간’ 될 수도
보도 줄이고 차선 늘리기 정비 신중히

 

광치기 해변에서 시작된 올레길을 비롯해 송악산 둘레길, 애월 한담길 등 제주하면 길이 생각난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느림의 미학’이라는 말처럼 요즘 제주를 찾는 사람들은 여유로운 트레킹이나 자전거로 해안변 도로를 일주하는 감성적인 라이딩을 즐기는 경향이 높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탐라순력도에 나타나듯이 제주에는 예전부터 도로가 잘 조성되어 있었다. 선비들의 유배길부터 농로, 몽고나 일제의 전쟁 저항선으로 활용하던 길 등 의미 있는 도로가 많았다.

이러한 추억의 길이 보다 빠르게 이동을 해야 하는 자동차문화로 인해 사람을 위한 길이 아니라 자동차가 주인 행세를 하는 도로가 되어 버렸다.

제주지역은 신작로라고 하는 기존의 일주도로를 시작으로 도로 확장 및 신설이 속도전을 방불케하고 있다. 자동차가 급격히 늘어난 때문이다. 제주시 도심지 도로의 역사를 살펴보면 1984년 동·서광로, 1994년 연삼로, 2004년에는 연북로가 개통되었다. 근래에는 애조로까지 10년마다 6차로 간선도로가 하나씩 만들어졌다. 교통 혼잡도 완화를 위하여 도로를 늘리지만 사정은 자동차 증가율에 비해서 도로율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서울 못지않은 교통난이 빚어지고 있다.

근래의 교통정책을 보면 도로혼잡에 의한 소통난, 자가용이 아니면 탈것이 부족한 승차난, 노상주차로 대변되는 주차난이 교통문제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도로를 확장하고, 버스를 늘리며, 주차장을 만드는데 행정력을 쏟고 있다.

그 결과 현재에 이르러 교통 소통이 잘되고, 버스 이용에 불편이 없으며, 주차할 공간이 많은지 반문해 보자. 많은 교통 전문가들이 이제부터는 수요관리 우선의 정책을 추진하자는 의견을 내지만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급급하다보니 당국은 근본적이고 지속가능한 교통정책으로 과감한 진입을 못하는 실정이다.

최근 제주자치도가 신공항 계획이나 신교통 도입 방안, 전기차 특구, 그리고 대중교통 우선의 제주형 교통체계 개편작업에 나서고 있음은 고무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제주의 미래산업을 주도하고 지속가능한 교통체계로 나아가기 위한 새로운 정책이 무엇인지에 대한 확실한 답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지금부터는 인구 추이나 토지이용 계획에 따른 지역간 교통망이나 경제성이 있는 신교통 수단의 선택은 물론 제주의 청정 환경을 지킬 수 있는 교통체계를 구상하여야 한다.

차고지증명제 하나로 자동차 증가를 잡을 수 없고, 주차장 확충만으로는 주차 수요를 충족할 수도 없다. 대중교통 우선 정책으로 가려면 당장 불편하지만 대중교통 우선차로가 아닌 버스 전용차로로 전환하고, 중앙전용 차로를 늘려 실제로 버스가 자가용 승용차보다 빠르고 안전하다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또 환승 알고리즘을 개발하여 대도시의 전철과 같은 수준으로 만들어 갈아타는 불편을 최소화하는 과학적인 교통정책으로 나아가야 한다.

현재 제주도내 버스가 다니는 길은 줄잡아 400여km가 넘는데 비하여 우선차로제 시행구간은 고작 15km이다. 그 중에서도 3.5km만이 중앙차로이므로 실제로 우선차로라고 하기에는 턱없이 짧은 구간으로 버스 이용에 메리트를 찾을 수 없고 해당 구간을 다니는 자가용 승용차는 불편만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가로변 우선차로제는 접속 교차로가 많은 제주도의 특성상 녹색 파선 즉 일반차량이 드나드는 구간이 50% 이상이나 되어 실효성이 극히 낮다.

도로는 자동차가 점유해 혼잡 할 때는 한없이 답답하기도 하다가 사람을 위한 낭만적인 힐링의 공간이기도 하다. 어느 쪽을 바라겠는가? 독일 등 선진국은 20년 후 도로가 남아도는 현상을 예측해 벌써부터 준비하고 있다. 장래에는 도로에서의 자동차 밀도가 달라 자동차 도로에 대한 새로운 디지인이 필요하므로 지금부터라도 보도를 줄이고 차선을 늘리는 도로 정비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제주는 깨끗한 환경을 중심으로 ‘청정 이미지’를 팔아먹고 살아야 한다. 아이디어 하나로 제주섬을 확 바꾸어 놓은 올레코스와 같이 자동차가 다니는 길도 다른 나라에서 벤치마킹을 하러 제주를 찾아오는 멋진 길을 우리 스스로 디자인해 보자. 그것이 제주가 앞으로 살아 나아갈 길이다.

저작권자 © 제주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