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인 지난 9일 아침, 150여명의 사람들이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사단법인 질토래비(이사장 문영택)가 동성과 돌하르방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진행한 ‘동성(東城)과 돌하르방길(을 따라가는 시간여행)’ 기행의 첫 순서였다. 질토래비는 제주어로 ‘길 안내자’란 뜻이다.

이들은 삼성혈에서 동문시장까지 이어지는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 등을 걸으며 2시간의 일정을 함께 했다. 이번 기행의 주목적지인 ‘동성’을 비롯해 제주 성(城)은 일제강점기 등을 거치며 거의 소실됐다.

동성 굽터 또한 제주지방기상청과 남수각 인근 삼성로 일대에만 겨우 남아 있을 뿐이다. 특히 동성 담의 옛 흔적이 서려있는 골목은, 동성에 대한 언급은커녕 제주에는 있지도 않았던 ‘추억의 기찻길 골목’으로 명명되어 있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씁쓸함을 자아내게 했다.

이 같은 경우는 가장 아름다운 절경을 자랑했던 공신정(拱辰亭)도 마찬가지다. 공신정은 원래 북수구에 세워진 문루(門樓)였다. 그러나 잦은 홍수로 누각을 동쪽으로 옮기며 이름도 공신루로 바꿨다. 제주성내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위치했던 공신루에선 성안은 물론 한라산에서 넓은 바다에 이르는 풍경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 일제의 신사(神社)에 밀리고, 근래 들어서도 무분별한 개발에 함몰되어 그 자취를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제주도가 그동안 ‘도심재생’ 운운하며 각종 사업을 펼쳐왔으나 정작 알맹이는 없는 허울에 불과했다. 지역의 역사에 대한 경외심(敬畏心) 없이 도심재생사업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날 기행에 나선 한 어르신은 “제주도민인데도 관광이라도 온 듯 낯설다”고 읊조렸다. 이게 바로 우리가 처한 제주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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