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아 감소세 작년 첫 5000명 미만
제주, 장려금 상향 등 나름대로 대책
‘아이 기르기 좋은 곳’인가는 의문

부모 가장 힘든 ‘돌봄’ 기능강화 외면
돌봄교실도 부족 교육비 가정 전가
새로운 돌봄공동체 육성 절실해

 

얼마 전 친구가 아이를 낳았다. 마흔 줄에, 몇 년 만에 둘째를 낳았는데 다행히 이 친구는 직업이 교육공무원이라 마음 편히 휴직에 들어갈 수 있었다. 몇 년 전에도 친한 친구가 둘째를 낳았는데 이 친구는 첫째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해에 아이를 출산하는 바람에 ‘최악의 조합’으로 힘든 한 해를 보냈다.

사람들은 보통, 육아의 고통이 아이가 태어나서 걷기 전까지 몇 년에 한정되는 줄 알지만, 맞벌이 엄마들에게 정작 더 큰 역경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해에 발생한다. 점심 먹고 하교하는 아이를 맡아 줄 ‘학원’을 찾아 빈틈없이 스케줄을 짜야 하기 때문이다. 돈은 돈대로 들어가면서 아이는 아이대로 힘들고 부모는 본격적인 사교육비 지출의 레이스에 발을 담그게 된다. 행여나 학원이 쉬는데 부모가 출근을 해야 하는 날이면, 혹은 방학이 되면, 부모들은 하루 종일 발을 동동거린다. 그래서 첫 애 입학 시기엔 절대 출산을 해서는 안 된다는 우스갯소리를 서로에게 건네곤 한다.

그런데 사실, 돌봄과 맞물린 사교육의 문제는, 개인의 일로만 웃고 넘길 일이 아니다. 이미 우리나라는 지난해 출산아 수가 사상 최저인 35만 명대로 추락하면서 국가 위기에 직면했다. 제주도 역시 지난해 처음 출산아 수가 5000명대 아래로 떨어졌다. 때문에 정부는 돌봄 기능을 강화하고 무상교육을 확대하면서 부모들의 양육 부담을 줄이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제주자치도 역시 출산 장려금을 첫째 기준 10만원에서 올해부터 50만원, 둘째 이상은 200만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도교육청도 교육계 종사자들에 대해 자녀 당 최고 700만원의, 전국 교육청 중 가장 높은 출산 축하금을 주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들이 과연 아이 기르기 좋은 제주도를 만드는데 노력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부모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부터 해소해주는 것이 상식이다. 아이 맡길 곳이 없고, 맡기려면 돈이 들고, 돈을 벌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노동해야 하는 구조를 깨뜨려야 한다. 특히 맞벌이 부부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제주의 경우 돌봄기능 강화에 더욱 집중해야 하는데, 어쩐 일인지 정부가 지역돌봄기능 강화를 위해 각 지자체에 제안한 ‘지역돌봄협의체’가 아직 제주지역에서는 구성되지 않고 있다. 도교육청 역시 돌봄을 교육 외 기능으로 판단해, 이 문제에 먼저 발을 떼지 않고 있다. 출산축하금은 ‘놀라울 정도’로 많이 주면서도 말이다. 지금, 도내에 돌봄교실이 부족해 공적 혜택을 받지 못 하는 학교가 8개 이상이다. 이 아이들의 오후 돌봄교육비는 오롯이 가정으로 전가된다.

얼마 전, 제주도의회와 제주지방자치학회가 제주지역 대학생 3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1대1 개별면접방식 설문조사에서 58.8%가 ‘저출산 문제에 대한 제주도 정책이 적절치 않다’고 답했다.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이유’로는 사실상 82.7%가 ‘경제적 어려움’을 꼽았다. 아이 키우기 힘들어하는 언니, 오빠 내외를 보면서 대학생 동생들이 결혼과 출산을 달가워할 리가 없다. 저출산 문제는, 행사장에서 ‘아이는 기쁨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부채를 나눠주는 정도로 해소될 일이 아니다.

아주 오래전, 무거움이 세상을 풍미하던 시대가 있었다. 분단된 한국에서 ‘안보’나 ‘경제발전’이라는 가치는 절대적이었다. 정부는 물론 지역 행정은 아주 오랫동안 새마을운동 시절의 5개년 발전계획과 같은 굵직굵직한 경제 정책에 몰두했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 섬 밖에서 들어오는 거대 자본이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도민은 많지 않다.

그보다는 내 동네에 울창한 나무가 늘어난다거나, 우리 딸 학교의 돌봄교실 정원이 확대된다는 소식이 더 반갑다. 많은 지자체들이 놀이터를 새롭게 갈아엎고, 화단을 가꾸고, 클린하우스를 정성들여 관리하는 시대다. 주민들이 살기 좋은 곳에서 지역의 매력이 뿜어지고, 정주민들이 느끼는 ‘행복 바이러스’가 가득한 곳에 관광객들이 몰려온다. 바람이 하나 있다면 올해가 가기 전, 원희룡 제주지사와 이석문 제주교육감이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새로운 돌봄공동체의 시작”을 발표하는 것이다.

최근 종영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마지막 문구는 ‘굿바이, 미스터 선샤인, 독립된 조국에서 씨유 어게인’이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굿바이, 미사여구! 이제는, 아이 기르기 좋은 그 곳에서 씨유 어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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