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과 폭력, 범죄를 피해 미국 정착을 희망하는 중미 출신 이민자 행렬(캐러밴·Caravan)이 23일(현지시간) 이동을 잠시 멈추고 휴식을 취했다.

멕시코에 진입한 중미 이민자들은 전날 남부 치아파스 주의 타파출라를 출발해 40㎞ 떨어진 우익스틀라에 도착했다고 엘 우니베르살 등 현지언론이 전했다.

이들은 시내 광장 주변에 모여 비닐 등을 덮고 노숙하거나 임시 텐트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수많은 이민자가 노숙하며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생활하다 보니 기침 등 호흡기 질환 증세를 보이는가 하면 장시간 이동에 따른 발 부상 등으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일부 어린이들은 고열을 앓고 있다.

이동식 병원 차량이 이날 광장 안에서 아픈 이들을 진료했다. 이동식 화장실과 샤워시설도 광장 구석에 설치됐다.

캐러밴을 지원하는 인권단체인 '푸에블로 신 프론테라스'는 이날 하루 우익스틀라에서 쉬면서 전날 이동 중 트럭에서 떨어져 사망한 이민자를 애도하고 남은 여정이 긴 만큼 이민자들이 기력을 회복하도록 할 방침이다.

캐러밴 본진은 멕시코에 진입한 후 75㎞를 이동했다. 아직도 최단 거리상에 있는 미국 남부 국경까지 1800㎞ 이상을 더 가야 한다.

캐러밴은 이동 중 사고 위험에도 노출되고 있다. 전날 한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이민자가 트럭을 타고 이동하던 중 떨어져 숨지는 등 캐러밴이 미 남부 국경을 향해 긴 여정을 시작한 이후 현재까지 최소 3명이 사망했다. 전날 숨진 이민자는 '콜롬비아'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고 온두라스인이라는 표식이 새겨진 손목 밴드를 차고 있었다.

캐러밴은 24일 날이 밝는 대로 북쪽으로 61㎞ 떨어진 치아파스 주 마파스테펙으로 이동을 재개할 예정이다.

시 당국은 음식과 물을 비롯해 기본적인 진통제, 수분 보충 수액을 이민자들에게 제공했다.

시민들도 이들에게 음식, 물, 약, 옷 등을 전달하며 온정의 손길을 내밀었다. 많은 멕시코인은 자신들이 과거에 겪은 비슷한 경험을 생각하며 캐러밴에 동병상련을 느낀다.

길거리에서 샌드위치를 나눠준 레이나 루시아 오치아는 "어린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찢어진다"면서 "그들은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가운데 우리가 인류애를 이해하도록 해준다"고 EFE 통신에 말했다.

캐러밴은 세계에서 가장 살인율이 높은 온두라스를 비롯해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등 중미 국가에서 폭력과 마약범죄, 가난을 피해 고국을 떠나 도보나 차량으로 미국을 향해 이동하는 이민자 행렬을 가리킨다.

최근 수년 사이 해마다 반 정기적으로 결성된 캐러밴은 멕시코나 미국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아 일자리를 얻고 정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예년과 달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올해 봄에 이어 다음 달 6일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위터 등을 통해 정치 쟁점화하면서 유독 주목을 받고 있다.

푸에블로 신 프론테라스에 소속된 활동가 이리네오 무히카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공화당원을 자극하는 데 캐러밴을 활용하고 있다"면서 "강력한 대통령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캐러밴을 이용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꼬집었다.

이번 캐러밴은 지난 12일 160명 규모로 온두라스 북부 산페드로술라 시를 출발했다.

캐러밴의 입국을 저지하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엄포에도 온두라스인 중심의 캐러밴 이동 소식을 접한 과테말라인, 엘살바도르인 등이 속속 합류하면서 현재 약 7300명으로 불어났다. 캐러밴에는 미국에서 살다가 추방된 이들도 다수 포함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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