分斷 상징이자 대화·교류의 場
영화 ‘JSA’로 널리 알려져
‘도끼만행’ 이후 대립·갈등 고착

42년 만에 ‘非무장지대’ 탈바꿈
11월부터 자유왕래 전망
平和 진일보…‘장밋빛 환상’ 금물

 

비무장지대(DMZ) 수색 중 지뢰를 밟아 대열에서 낙오된 이수혁 병장(이병헌 분)은 북한군 중사 오경필(송강호)과 전사 정우진(신하균)의 도움으로 다행히 목숨을 건진다. 이를 계기로 남과 북의 병사는 서로 친해졌고 이수혁 병장은 군사분계선을 넘어 그들을 만나러 간다.

그러던 어느날 그들이 만나는 장면이 북한군에게 발각되고 친형제처럼 지내던 그들은 서로 총부리를 겨눈다. 그리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 북한 초소에서 총성이 울린다. 북한 초소병 정우진이 죽고, 그 옆엔 중년의 북한 중사 오경필도 총에 맞아 쓰러져 있었다.

또 군사분계선 한가운데서는 이 살인사건의 용의자인 이수혁 병장이 총상을 입은 채 발견된다.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중립국 감독위원회 소속 한국계 스위스인 소피 장 소령(이영애 분)이 파견된다. 그녀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그들을 만나게 되는데….

공전(空前)의 히트를 기록했던 박찬욱 감독의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2000년 개봉)의 줄거리다. 당시 한국영화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일깨워 준 작품이란 평을 받은 이 영화는 ‘쉬리’(1999년)가 세운 2백44만명 동원 기록을 불과 1년여 만에 갈아치웠다. 남북 병사들이 초코파이를 나눠먹는 명장면 등으로 파죽의 흥행은 물론 ‘JSA’의 실체(實體)를 널리 알리는 기폭제로도 작용했다.

6·25 전쟁의 산물로 군사분계선상에 설치한 JSA(Joint Security Area). 공식 명칭은 ‘군사정전위원회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이다. 우리 민족에겐 분단(分斷)의 상징이자 남북한 직접 대화 및 교류의 장이 되기도 했다.

당초 JSA에선 쌍방의 군사관계자들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가 있었다. 근무기간이 오래된 사병들은 평소 안면이 있는 북한 병사와 수시로 대성동 마을 부근과 감시카메라가 닿지 않는 곳에서 담배와 술을 주고받는 등 접촉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탄생 배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난 1976년 8월 북한군의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이 사건은 시야를 가리던 나뭇가지 치기가 발단이 되어 끔찍한 살상으로 번졌다. 50~60명의 북한 병사들이 도끼와 몽둥이로 작업을 감독하던 미군장교 2명을 살해하고 9명에게 중경상을 입힌 뒤 초소 등을 파괴하고 달아났다.

이에 미국은 F-4 전폭기 및 F-111 전폭기 대대를 한국에 배치하는 한편 핵(核)항공모함인 레인저호와 B-52 폭격기를 출동시켰다. 또 오키나와 주둔 해병대를 증파하는 등 강경한 대응을 취하며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유감을 표하며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그 후유증은 매우 컸다. 이후 양측 간의 충돌 방지를 위해 군사분계선(MDL)을 표시하고 서로 상대측 지역에는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개인적으로 만나거나 말을 거는 것도 금지됐다. JSA가 ‘냉전(冷戰)의 상징’으로 고착화된 것이다.

그로부터 무려 42년이 흐른 지금, JSA가 다시 비무장(非武裝) 상태로 전환됐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의 남북 초소와 병력 및 화기 철수 작업이 이달 25일 완료됐고 남과 북, 유엔사령부 3자 협의체의 공동검증도 마쳤다. ‘9·19 군사합의서’ 이행으로 성과를 낸 첫 작품이다.

앞으로 남은 것은 신규 초소 설치와 감시장비 조정이다. 계획에 의하면 북측지역 ‘판문점다리’ 끝점에 우리 측 초소가 설치되고, 대신 우리 측 판문점 진입로 근처에는 북측 초소가 새로 설치된다. JSA 남북지역에 북남 초소가 설치되는 것은 JSA 방문객 중 월남(越南) 또는 월북(越北)을 막기 위한 조치로 여겨진다. 따라서 이들 초소가 완료되면 이르면 11월 중 남북 민간인과 외국인 관광객이 JSA 남북지역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JSA 자유왕래’는 이미 아홉고개를 넘었으나 진정한 남북평화의 길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지금 한반도 평화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기류는 혼조(混潮) 상태다. 갈 길 바쁜 ‘비핵화’는 더딘 반면 우리 정부는 ‘조급증’을 참지 못하고 있다.

남북관계를 너무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도 문제지만, 일각의 ‘장밋빛 환상’ 또한 금물이다. 독일의 통일(統一)은 거저 얻은 게 아니다. 그들은 어떤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철저히 준비하고 기다려왔다. 우리가 독일에서 배울 것은 다름 아닌 ‘기다림의 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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