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불황 임차인 어려움 함께 나눠
월 600 임대료 100만원 ‘뚝’
세입자 힘든 모습 보며 相生 실천

평생 과일 장사로 모은 수백억원
대학에 쾌척한 老부부도
각박한 현실 ‘그래도 살만한 세상’

 

지난달 어느 노(老)부부의 ‘통 큰 기부’에 이어, “요즘 힘들죠?”라며 세입자의 월세(月貰)를 깎아준 건물주의 배려심이 화제가 되고 있다. 각박하기만 한 세태에 어려운 이웃을 보듬는 그 마음이 초겨울 한파를 딛고 훈훈하게 다가온다.

최근 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런 건물주 보셨나요?’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업로드됐다. 해당 글을 쓴 작성자는 자신의 지인이 겪은 사연을 소개했고, 이 미담이 각종 커뮤니티로 확산되며 누리꾼들의 열띤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소개된 미담의 내용은 이렇다. 인천시 부평구에서 떡볶이 가게를 운영 중인 백모(43)씨는 지난달 말 건물주 변모(63)씨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도장을 들고 자기 사무실로 찾아오라”는 전화였다. 백씨는 갑자기 불안해졌다. 혹시 임대료를 인상해 달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엄습한 것이다.

예상대로(?) 건물주가 내민 문서는 ‘한시적 월 임대료 조정 합의서’였다. 앞이 캄캄한 채 합의서를 읽어 내려가던 백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마터면 눈물까지 흘릴 뻔 했다.

조정 합의서엔 당초 예상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 적혀 있었다. ‘경기 불황으로 인한 임차인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자 한시적으로 임대료를 인하 하겠다’는 의외의 제안이었다. 내용인즉, 월 600만원이던 임대료를 올해 11월부터 내년 12월까지 500만원으로 깎아주겠다는 건물주의 선처였다.

뜻밖의 ‘선물’을 받은 떡볶이 가게 주인 백씨는 “경제 사정이 안 좋아서 아르바이트생을 줄인 상황이었다”면서 “하지만 임대료가 줄어들어 여유가 조금 생겼다. 손님이 많은 시간대에 아르바이트생을 한 명 더 고용해 기존 아르바이트생의 편의를 봐줄 생각”이라고 전하며 환하게 웃었다. 선의의 마음이 또 다른 선(善)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미담의 주인공인 건물주 변씨는 다른 세입자들을 대상으로도 10~20% 정도의 월 임대료를 인하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변씨는 한 인터뷰에서 “지난 14년 동안 이곳에서 건물 관리를 해왔는데 여태까지 이렇게 세입자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은 못 봤다”며 “요즘 경기도 좋지 않은데 어려운 때일수록 상생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경기 침체로 인해 임차인들의 한숨과 한(恨) 섞인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제주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핫’하다는 신제주 옛 바오젠 거리 주변도 마찬가지다. ‘사드 보복’ 이후 썰물처럼 빠져나간 중국인 관광객은 아직 회복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가게 문을 닫는 곳이 갈수록 늘고 있다. 특히 ‘중국인 특수’를 노려 장사를 했던 곳은 문을 닫았거나 개점휴업 상태다.

상황이 그런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건물주들은 임대료 인상에 열을 올리고 있다. 올해 들어 무려 2배 이상 올린 곳도 있다고 한다. 이에 응하지 않으면 주먹보다 더 무서운 ‘법대로’를 들먹인다. 상생(相生)의 정신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가 없다. 인천시 부평구 60대 건물주의 월세 인하가 ‘위대하게’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보다 앞서 지난달 25일 평생 과일 장사를 하며 모은 200억대 재산을 고려대에 기부한 노부부의 경우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대표적인 귀감(龜鑑) 사례다. 그리고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서 앞으로 200억원을 더 기부할 예정이라고 하니, 보통 사람으로선 언감생심(焉敢生心) 꿈도 못 꿀 일이다.

이 돈은 실향민인 김영석 옹(91)과 경북 상주 출신 양영애 할머니(83)가 젊은 시절부터 50년 동안 과일 장사를 하면서 한 푼 두 푼 절약해 억척스럽게 모은 재산이다. 노부부의 ‘땀과 눈물의 결정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피 같은 돈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경지다. 환원은 ‘본디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을 뜻한다. 노부부의 일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떠나는 ‘무소유(無所有)적 삶’ 그 자체였다.

기부식이 열린 날,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에 앉은 김 옹의 눈에는 오랜 꿈을 이뤘다는 감격이 스쳐지나갔다. 양 할머니의 소감도 단촐했다. “나같이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사람이 학교에 기부할 수 있어서 매우 기쁘다….” 각박한 현실 속 ‘그래도 세상은 살만하다’며 다소나마 위안을 느끼는 것은 바로 이런 의인(義人)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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