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 동창끼리 떠난 1박2일 여행
45년 前 옛 시절로 돌아가
즐거운 회포…‘인생 2막’ 걱정도

공직 등 ‘58년 개띠’의 전면 퇴장
세월은 가고 아련한 추억만
‘일갑자 내공’ 믿고 새롭게 출발을

 

환갑(還甲)은 60갑자가 한 바퀴 돌았다는 뜻이다. 만 60세(우리나이 61세)가 되는 해로, 회갑(回甲)이라고도 한다. 예전 같으면 환갑은 장수(長壽)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평균 수명이 크게 늘면서 잔치는커녕 제2막 인생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여기는 풍조가 대세다.

지난 토~일요일 1박2일간 중학교(신창) 동창생끼리 서울을 거쳐서 충청도로 환갑여행을 다녀왔다. 그 유명한 ‘58년 개띠’가 주력이나 동창 중에는 ‘59년 개띠’ 혹은 ‘57년 개띠’도 끼어 있었다.

남녀 공학인지라 30여명의 일행은 남자 반, 여자 반이었다. 남자의 경우 몇 사람을 빼고는 대부분 정년을 넘긴 상태였다. 여자 동창들은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라 손주를 둔 ‘할머니’로 변해 있었다. 그러나 ‘100세 시대’ 등의 영향 탓인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걱정은 너와 내가 따로 없었다.

일행 가운데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만난 동창들도 있었다. 졸업 후 45년이란 시간이 훨씬 지났음에도 신기하게 옛 기억이나 추억은 또렷하게 다가왔다. 세월을 뛰어넘어 그토록 반갑기만 한 것은 지난 시절에 대한 진한 그리움, 즉 향수(鄕愁)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58년 개띠’의 이미지는 매우 독특하다.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비슷하게 살아온 57년 닭띠나 59년 돼지띠와는 달리, 유독 1958년생에겐 ‘58 개띠’가 무슨 관용구처럼 따라다닌다. 58년 개띠인 필자도 그 이유와 원인을 알기 위해 다각도로 조사해 봤지만 똑 부러지는 결론은 없었다.

58년 개띠들을 다룬 소설도 나왔다. 한 살 아래 은희경이 쓴 장편소설 ‘마이너리그’(2001년)가 바로 그것이다. 당시 신문들이 쏟아낸 서평은 이랬다. ‘삼류(三流)에게 내미는 연민의 손길’ 혹은 ‘58년 개띠들의 변두리 인생’, ‘패자부활전 없는 세상에 던져진 대한민국 보통 남자들의 인생유전’ 등등.

58년 개띠들은 말 그대로 ‘개 같은 인생’을 살았다. 그 수가 많다 보니 누구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학교를 다녔고 혹독했던 박정희 정권 아래서 청춘을 보냈다. ‘광주 5·18’ 때는 피 끓던 데모대의 선봉에서, 아니면 진압군의 일원으로 나뉘어 서는 역사의 아픔도 경험했다.

때문에 58년 개띠의 머릿속에는 ‘공간’과 관련한 많은 기억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공간에는 개발독재 및 압축성장의 편린(片鱗)들이 가득하다. 이들은 끌어주는 선배 흔치 않고, 밀어주는 후배 또한 찾기 어렵던 시기에 일찍부터 혼자 크는 연습을 했다. 어쩌면 ‘자존심’일지도 모를 배포와 배짱으로 자기 공간을 어렵게 버텨냈다.

가정보다는 일벌레로 살았고 사회의 중요한 허리 역할을 맡았던 1997년엔 사상 유례 없는 IMF 경제위기를 맞았다. 이로 인해 빚어진 ‘사오정(45세 정년)’과 ‘오륙도(56세까지 회사를 다니면 도둑놈)’ 신세도 결국 이들 몫이었다.

민간영역에서 일했던 동갑내기들은 이미 5~6년 전부터 일선에서 물러났다. ‘철밥통’이라 일컬어지는 공직사회도 올해가 마지막이다. 58년생의 은퇴는 사실상 우리 사회에서 ‘베이비 부머’의 전면적인 퇴장(退場)을 의미한다. 베이비 부머의 상징이 바로 58년 개띠들이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동창들의 환갑여행에서도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오갔다. 자식들 취업과 결혼문제를 비롯해 부모를 봉양하는 마지막 세대인 반면 효도 받기는 일찌감치 포기했다는 푸념도 나왔다. ‘100세 시대’가 반갑기보다 오히려 두렵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하지만 결론은 그렇다고 슬퍼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자로 이어졌다. 가는 세월을 잡을 수도 없고, 흘러가는 시냇물을 그 누가 막을 수 있느냐며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이자고 했다.

타지에 사는 동창들과 서울에서 이별을 고하고 나머지 일행이 제주공항에서 헤어지며 던진 말은 “또 만나자”였다. 1년에 한 번 만큼은 꼭 여행을 가자는 제안은 여자 동창들 입에서 먼저 나왔다. 나이가 들면서 남자보다 여자들의 ‘기’가 세진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서양에서는 60년을 ‘다이아몬드’에 빗댄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그만큼 내면적으론 강고(强固)해졌다는 뜻일 터다. 60갑자를 한 바퀴 돌아 우리는 새로 태어났다. 믿을 것은 그동안 쌓아온 일갑자의 내공(內功) 뿐이다. 이번 여행은 환갑이 새로운 시작임을 절감케 해준 아주 소중한 기회였다. 신창중 제23회 동창을 포함 ‘58년 개띠’들의 행운과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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