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된 유적서 전시회 일단락
관람객과 소통하며 진실 캐기 작업
잊혀진 역사 되살아나 우리 앞으로

비엔날레 행사 부정적 시각에도
알뜨르 야외 전시 긍정평가 많아
앞으로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됐으면

 

제주국제비엔날레의 일환으로 지난해(9~11월)에 이어 올해 상반기 두 달, 하반기 한 달간 진행됐던 ‘알뜨르 프로젝트’ 전시회가 지난 4일 일단락됐다. 세 번의 전시에 운영감독으로 참여하면서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몇 가지 흥미로운 일들이 생각난다.

그 중 첫 번째는 올 봄 대만 청년들이 알뜨르를 방문했던 일이다. 이들이 제주를 찾은 사실을 알고 대만과 한국 청년 각 10여 명씩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하는 행사를 기획했다. 함께 알뜨르 전시를 관람하고 토론을 이어가는 행사다. 두 나라는 비슷한 시기에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터라 역사적 공감대 위에서 흥미로운 토론을 이어갈 것으로 기대했다. 국민들이 전쟁에 동원된 것은 물론 강제노역과 위안부 문제까지 짙은 아픔과 증오가 토로될 것이라는 예상도 했다.

그러나 당일 알뜨르를 방문한 대만 청년들의 태도는 예상을 벗어났다. 그들에게 알뜨르는 한때 격납고로 사용되었던 시멘트 구조물일 뿐 여기서 어떤 역사적 아픔을 유추해내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자리를 이동해 이어진 토론에서도 한국 청년들과는 결이 다른 감상과 역사의식을 드러냈다.

그들에게 식민시대는 국가의 발전을 가져온 계기로 인식되었고 일본은 그저 지나간 여러 통치자들 중 하나로 여겨질 뿐이었다. 식민지하의 민생이 윤택했으랴만 적어도 자주권을 빼앗긴 것에 분노하고 저항했던 우리와는 달랐던 것이다. 항일 독립 의사들을 높이 기리고 식민문화를 증오해온 우리 토양에서 자란 한국 측 토론자들은 이러한 대만 청년들의 입장을 짐작조차 해볼 수 없었고 이 같은 사실에 적잖은 충격과 당황에 휩싸이는 것 같았다.

두 번째는 이 전에 관제탑으로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멘트 축조물에 관한 이야기다. 알뜨르 비행장 활주로 옆 지금은 너른 밭들 한 가운데에 사람 키를 넘게 우뚝 솟은 시멘트 구조물이 있다. 대체로는 관제탑이었다고 하고 어떤 자료는 물탱크였다고도 한다. 1930년대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이 구조물은 관제탑이라면 당연히 군사 목적의 축조물답게 기능에 충실해야하지만 기둥 모양이 위로 올라갈수록 굵어지는 형상을 하고 있다. 안정성 대신 미에 충실하여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내내 궁금증을 품고 건축 전문가 몇몇에게 물어봐도 이 구조는 안정성에 반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해줄 뿐이었다. 하여 관람객들을 이끌고 이곳에 닿을 때면 늘 질문을 던져보곤 했다. ‘이게 과연 무슨 용도의 시설일까요?’

그러던 중 기자인 내 친구가 방문을 했던 날이다. 어김없이 질문을 던지자 친구는 과연 기자다운 예리하고 꼼꼼한 눈으로 살피더니 일본 신사의 ‘토리이’를 닮았다고 했다. 친구가 인상적인 답변을 남기고 간 후 마침 일본 아이모리 관광청과 박물관 직원들이 알뜨르에 관람을 왔다. 이들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처음엔 토리이와 많이 비슷해 보이긴 하지만 다른 부분들이 있다는 반응이었다.

잠시 후에 계단을 통해 탑 위에 오른 일본 관람자들은 돌연 신사의 토리이일 가능성이 많다고 확언하는 게 아닌가. 산방산이 기둥 사이로 정(正) 중앙에 들어오는데 이것은 산방산을 신성시했다는 의미라는 설명이다. 일본의 신사들도 대부분 산을 중앙에 놓아 신의 영역을 표시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활주로 옆에 바로 붙어 위치한 걸로 보아 전투기 출동 전에 기도를 올릴 제단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불분명한 사실들이 관람객들과의 대화를 통해 어느 정도 해소되었던 사례는 이것 말고도 더 있다. 방치된 유적을 찾아 전시회를 열고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소통을 하다보면 잊혀진 역사가 되살아나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알뜨르 섯알오름 예비검속 유족회 양신하 고문은 이런 말을 했다. “이국적인 풍광만을 즐길 것이 아니라 당신이 알고 있는 것 보다 더 특별한 것이 발아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꼭 알고 가야 한다.”

지난해 제주국제비엔날레 행사에 대해서는 다소 부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알뜨르 야외 전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본다. 당초 예상보다 뜻 깊고 가치 있는 행사였다. 알뜨르와 관련한 더 다양한 프로그램이 개발되고, 야외 전시 같은 행사가 꾸준히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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