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배달된 뜻밖의 성탄카드
밤새워 동네 돌던 ‘새벽송’ 등
아스라한 기억 오롯이 되살아나

급격히 바뀐 ‘X-mas’ 풍속도
각박해진 인심 그대로 반영
크리스마스 진정한 의미는 ‘나눔’

 

정말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집으로 배달된 크리스마스 카드를 받아보기는…. 카드엔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 그림과 함께 ‘우리에게 오신 아기 온 세상의 빛이 되셨네!’란 문구 아래 짤막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주님의 성탄을 축하드립니다. 한 해 동안 저희 수도원의 선교사업을 아낌없이 후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은혜로운 성탄 되시고 새로운 한해를 잘 맞이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발신지는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선교총무국이었다. 고향 선배의 자제가 그 곳에 수사신부님으로 계신 것이 불현듯 떠올라 열흘 전 제주감귤 몇 상자를 보내준 것에 대한 답신인 모양이다.

이유야 어떻든 성탄 카드를 받고 무척이나 반가웠고 기뻤다. 그것은 아스라한 ‘추억(追憶)’에 대한 그리움인지도 모른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손으로 직접 쓴 카드를 주고받은 것은 아마도 군대 시절이 마지막인 것 같다.

우리들 어릴 적 크리스마스는 개인의 믿음 여부를 떠나 모두의 축제였다. 성탄절이 되면 끼리끼리 짝을 지어 24일엔 성당을 찾고, 25일 저녁에는 예배당도 기웃거렸다. 구호(救護) 옷이나 공책 등 크고 작은 선물을 공짜로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기 때문이다.

당시 성당에 다녔던 필자는 성탄 대축일 전야미사 후 동네마을을 한 바퀴 도는 ‘새벽송’도 겨울 추위를 마다않고 열심히 따라다녔다. 그때만 해도 시골 인심이 넉넉했던 터라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을 소리내어 불러도 짜증내는 법이 없었다. 비록 신자가 아니더라도 대부분 수고한다며 삶은 고구마 등을 건네주기 일쑤였다.

하지만 새벽송을 도는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다. 새벽녘 즈음 꼬마들에게 사주던 달콤한 짜장면 맛을 잊지 못해서다. 당시 짜장면을 먹는다는 것은 감히 바랄 수 없는, 언감생심(焉敢生心) 그 자체였다. 짜장면은 침샘을 자극하는 꿀맛이었고, 밤새 꽁꽁 얼었던 몸도 풀리게 만드는 그야말로 특효약이었다. 이후 어떤 음식도 그 맛에 비길 수는 없었다.

어쩌다 짜장면 얘기까지 나왔는데, 그래도 크리스마스 추억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바로 성탄 카드다. 모두가 힘들던 때이고 시골이라 카드를 구경하기조차 어려웠다. 때문에 국민학교(초등교) 시절엔 성당에서 눈요기한 것을 바탕으로 스스로 성탄 카드를 만들어서 보냈다. 그림 실력도 엉망이거니와 도화지 등을 구하는 것도 만만치 않아 채 다섯장을 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학교 입학 후에는 시골에도 문구점이 들어서 신(新)문물을 접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이후부턴 성탄 카드의 용도도 종교적인 색채를 뛰어넘어 존경과 사랑 고백 등의 마음을 담은 ‘메신저’로 변했다.

카드의 내용 또한 ‘성탄을 축하합니다’란 상투적인 것에서 벗어나 보다 신중해졌다. 무릇 연애 감정 혹은 연애 편지의 시발(始發)이 ‘거룩함’을 담은 성탄 카드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한 가지 변명하자면 여기서의 ‘연애(戀愛)’는 비단 남녀 간의 애틋한 사랑만은 아니다. 바로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 필자는 김남조 시인을 통해 이를 배웠다. 그러기에 아직도 기억하는 구절이 있다.

“가고 오지 않는 사랑이 있으면 기다려 줍시다 / 더 많이 사랑했다고 해서 부끄러워 할 건 아닙니다 / 먼저 사랑을 건넨 일도 잘못이 아닙니다 / 더 오래 사랑한 일은 더군다나 수치일 수 없습니다 / 요행히 그 능력 우리에게 있어 행할 수 있거든 / 먼저 사랑하고, 더 많이 사랑하고, 진정으로 사랑하고 / 가장 나중까지 지켜주는 이 되십시다.”

-김남조의 ‘그대들 눈부신 설목(雪木)같이’ 중에서-

최근 들어 크리스마스의 풍속도(風俗圖)가 크게 바뀌었다. ‘손 카드’는 찾아볼 수가 없고, ‘새벽송’도 사라진지 오래다. 인심 또한 매우 각박해지고 메말라졌다. 그 속에서 우리들의 크리스마스 추억도 점점 잊혀져가고 있다.

중세 교회에서 성탄절 다음날 교회에 설치해 두었던 자선함(alms box)을 열어 그 속에 든 내용물을 가난한 이웃에게 나누어 준 것처럼,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는 ‘나눔’이다. 이게 바로 아기 예수가 우리에게 오신 의미이며, 온 세상의 빛이 되신 이유다.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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