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일 천주교 제주교구장이 성탄절을 맞아 ‘번영의 신화에서 깨어나십시오!’라는 제목의 사목서한을 발표했다.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들이 더 발전하고 더 성장해야 된다는 무조건적인 욕구와 강박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가장 힘없고 나약한 이들이 제일 무거운 짐을 지고 구석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충고이자 경고였다.

성탄절 사목서한에서 강 주교는 갖가지 참담한 사례들을 열거했다. 지난 2016년 5월 서울 지하철 구의역에선 19살 먹은 비정규직 청년이 혼자 일하다가 진입하던 열차와 안전문 사이에 끼여서 숨졌다. 그의 유품에는 컵라면이 들어 있었다. 근무 조건이 열악하여 끼니를 제대로 챙겨먹을 시간도 없었기 때문이다.

2017년 11월엔 서귀포 한 특성화 고등학교 3학년 18살 학생이 생수업체 공장에서 혼자 일하다 기계포장 작업 중 압착사고로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올해 12월 10일에도 태안의 화력발전소에서 혼자 야간 순찰을 돌던 젊은이 한 명이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서 또 숨졌다. 그의 유품에도 컵라면이 몇 개 들어있었다.

강 주교는 “우리는 물질주의가 만들어낸 ‘번영의 신화(神話)’에 취하여 한없는 발전과 성장이 세상 모두가 추구해야 하는 최상의 목표로 오인해 살고 있다”며 이 번영의 신화가 ‘이 시대의 우상(偶像)’이 됐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오래전 이집트의 파라오는 절대 권력으로 백성을 고난에 빠지게 했고, 아우구스투스 로마 황제는 제국의 지배력과 번영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각종 칙령을 내렸다”며 “오늘의 세상도 이들 제국이 추구하던 권력과 번영을 향해 브레이크 없는 수레처럼 질주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강우일 주교는 “더 큰 권력과 더 화려한 번영을 향해 끊임없이 유혹하는 오늘의 우상들에게 더 이상 우리 자신을 종으로 내어주지 말자”고 강조했다. ‘브레이크 없는 수레의 질주’를 멈추는데 모두가 슬기를 모으고 힘을 합쳐야 한다는 호소다.

이번 성탄절 사목서한은 우리사회의 병폐를 예리한 안목으로 적시하고 있다. ‘번영의 신화’에 취한 것은 정부당국이나 기업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스스로도 냉정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강우일 주교의 충고가 세상을 바꾸는 실천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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