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우 기획초대전 ‘너의 어두움’
내년 2월까지 기당미술관서 개최
침잠하고 싶어지는 계절이다. 봄을 기다리며 동면에 든 어떤 생명들처럼 깊은 어두움의 공간으로 들어가고 싶다. 사람은 언제고 모두가 죽음을 앞둔 존재들. 심지 굳은 누군가와 함께 있어도 누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고독하다. 고독은 모든 존재의 필연적이고 본연적인 상태다.
블루계열의 단일 초상이나 군상 이미지를 통해 인간이 지닌 불안과 고뇌, 절망의 세계를 표현해 온 고영우(75) 화백이 지난 18일부터 내년 2월20일까지 기당미술관의 초대를 받아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고영우는 사람의 표정이나 동작을 간결한 선으로 무심히 그린다. 표정 없는 군상, 무릎을 꿇거나 고개를 떨군 초상들은 근원적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작가 자신이거나, ‘실존’하는 우리다. 그의 작품은 어둡고 심연 깊은 곳을 응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다른 한편 불안과 고뇌가 파생시킨 안식과 건강함을 품고 있기도 하다. 흔들리는 존재는 삶의 어두운 뒷면 어딘가에서 거칠게 숨을 몰아쉬지만 생의 의지를 끝까지 붙들고 있다.
그는 종지기 화가로 유명하다. 매일 일정한 시각이 되면 자전거를 타고 성당으로가 정시를 알리는 종을 친다. 종소리는 서귀포시내를 지나 바다와 하늘 먼 곳으로 퍼져나간다. 어쩌면 그가 바깥 세상과 유일하게 소통하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그는 젊은 시절 공황공포를 느끼면서 서귀포를 벗어난 일이 없는 작가로 다소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난 40여년이 넘는 시간동안 바다가 아름다운 서귀포에 머물면서 일부를 제외하곤 풍경화를 거의 그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가 더 본질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것들에 둘러싸여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감정과 사고는 ‘흔들리는 존재’ ‘너의 어두움’ ‘잃어버린 이름’ 등의 연작을 탄생시켰다.
김영호 중앙대 교수는 “종지기 화가 고영우의 푸른 초상들은 개인의 심리적 강박에서 온 것이지만 종탑에서 울리는 만종의 종소리처럼 일상에 대한 감사의 표상이자 자유와 생명에 대한 예찬의 메시지로 다가오기도 한다”고 적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너의 어두움’ ‘황량한 어두움’ 연작과 드로잉을 다수 만날 수 있다. 문의=064-733-15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