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가 불투명한 허무주의 시대
인간들 이(利) 우선적 가치로 삼아
사회 피로감은 모두의 행복 앗아가

사람 사는 세계 회복조건은 인의(仁義)
새해는 타인과 함께 즐기는 실존적 삶
충만한 질적인 시간으로 만들었으면

 

힘든 한 해였다. 지나간 것은 다 너그럽게 볼 수 있다지만 2018년 한 해는 희망보다는 좌절로, 확신보다는 회의로 얼룩진 시간들이었다. 민의의 전당이라는 여의도와 연동의 정치는 냉소적인 코미디로 희화화된 지 오래고, 사회정의의 실현 역시 이번에도 가진 자, 쥔 자들만의 말잔치로 끝난 기분이다.

이번 기해년도 ‘혹시나’에서 ‘역시나’로 끝날지언정 새해맞이만큼은 서로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문자로 시작하는 우리들이 아닌가. 나 역시 독자 여러분께 태산준령 앞에 호미 한 자루를 쥔 심정으로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는 인사를 올린다.

신년은 한 해를 떠나보내는 사람에게나 맞이하는 사람에게 생각할 거리를 준다. 지난 한해 무엇이 우리를 그토록 힘들게 한 것일까? 그것은 경제적인 것이요, 따라서 물질적인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조금 더 들여다보면 미래가 불투명한 허무주의 시대의 심리적 박탈감 때문은 아닐까?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일이다. 종래의 종법질서를 대체할 사회에 관한 근본적인 담론을 전개하던 시기이다. 이 때 전국 7웅의 맹주로 올라서려던 양나라 혜왕 역시 맹자를 불러 묘안을 구한다. “선생께서 천길 마다않고 찾아주셨는데 장차 이 나라를 이(利)롭게 할 방도가 무엇인지요?”그러자 맹자는 “어찌 이(利)를 말하라 하십니까? 오직 인(仁)과 의(義)가 있을 따름”이라고 대답한다.

혜왕의 생각이 그릇됨을 맹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만일 왕께서 어떻게 하면 내 나라에 이익이 될까 하는 것만 생각하면 … 결국 모두가 자신에게 이익이 될 것만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처럼 위 아래가 서로 다투어 이(利)를 추구하게 되면 나라가 위태로워지기 때문입니다… 만일 의(義)를 경시하고 이(利)를 중시한다면 남의 것을 모두 빼앗지 않고선 만족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당연히 혜왕에게 인의론은 고담준론(高談峻論)의 허학(虛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나 역시 이 뜬구름 잡는 허학을 기해년 새해의 화두로 던진다. 2천년이 지났지만 조금도 변함없이 이(利)를 우선적 가치로 삼는 세상에서 사람 사는 세상을 회복하는 조건이 인의(仁義)라는 확신 때문이다.

누구에게는 취직이나 진학이, 또 누구에게는 승진이나 재물이 절실하고 많이 받아야 할 복(福)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불가피하게 남을 좌절시키고 자기를 속박해야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당사자에게는 노력의 댓가일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경쟁에서 소외된 다수가 있기 마련이다. 승자 독식의 2항 대립 구조에서는 오직 ‘힘’(利) 하나면 충분하다. 경쟁력을 부추기는 사회에서는 얼마든지 유해식품, 환경오염, 악플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이(利)를 추구하는 사회의 피로감은 결국 우리 모두의 행복을 앗아 간다.

우리 사회의 화두는 함께 살아가는 지혜이어야 한다. 이 화두에 묻고 또 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라가 제대로 설 수 없다. 어떤 자선가가 자신을 밝히지 않은 채 기부하는 모습은 그에게 이웃은 제 3자인 남이 아니라 함께 살아야 할 2인칭 ‘당신’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따뜻한 장면으로 다가선다. 이것이 맹자가 말하고자 한 인의(仁義)의 세상이 아닐까?

고대 그리스인에게 있어서 인간다움(humanitas)이란 좀 더 영양이 풍부하고 좀 더 맛있는 열매를 맺을 줄 아는 인간을 일컫는다. 그러한 인간은 윤리적 행동을 통해 나타나며, 그것이 그리스 고전 윤리학이 말하는 인간의 위대함, 고귀함이다.

2019년 한 해는 숫자로 측정하거나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나의 실존적 삶이 충만해 있는 질적인 시간으로 만들었으면 싶다. 취직, 승진, 진학 등 일방 궤도를 숨 가쁘게 달려온 시간을 돌이켜보면서 올 한해 진솔한 인간적 시간이 되살아났으면 한다. 그 중 하나가 여럿이 함께 즐거워하는 ‘여민동락(與民同樂)’이다. 아쉽게도 우리사회의 즐거움은 나 혼자의 즐거움, 즉 독락(獨樂)이다. 그래서 타인과 함께 즐기는 인의(仁義), 이것이 새해 많이 받아야 할 복(福),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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