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1개월兒 보호자 보고 반응
방긋 웃고 팔다리 춤추듯 움직임
이런 ‘사회적 미소’ 어른들에 필요

文 정부 ‘국민 공감’ 국정 화두로
공감의 뿌리는 생각의 다양성 존중
올해 국민들 얼굴에 미소 활짝 피길

한 유치원에 갓난아이 샘(Sam)이 어머니와 함께 등장한다. 유치원 교실 한가운데에는 샘이 기어 다닐 녹색 담요가 깔린다. 유치원생들은 샘을 중심으로 담요 위에 둘러앉아 노래를 부른다.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인사의 노래다.

“안녕 샘, 잘 지냈니? 잘 지냈니? 안녕 토마스, 오늘 기분 어떠니? 오늘 기분 어떠니?”

이것이 ‘공감의 뿌리’ 교육의 시작이다. 이렇게 시작된 수업은 말 못하는 갓난아이와 유치원 어린이들이 마음과 몸짓으로 소통하고 서로의 감정을 읽어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지극히 순수한 갓난아이를 통해 아이들이 저마다 간직하고 있는 자신의 순수한 마음과 따뜻한 감정을 발견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이 교육의 주안점이다.

아이의 부모와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이래라저래라 가르치지 않는다. 샘과 유치원생들이 교감하는 것을 곁에서 도울 뿐이다. 예컨대 샘이 교실의 장난감에 관심을 보이며 웃거나, 장난감 쪽으로 기어가다가 담요 바깥으로 나가 불안해하는 표정을 지을 수 있다. 그때 선생님이 개입한다. 유치원생들에게 “샘의 기분이 어떨 것 같니?”라고 묻는 식이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느낌을 말한다.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느낌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손을 들고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느낌을 말하면, 선생님도 “고맙다”고 말한다. 이는 칭찬이 아니라 감사다.

수업의 골격은 이처럼 단순하다. 이게 과연 교육일까 싶을 정도다. 하지만 유치원생과 갓난아이 샘이 9개월간의 교육과정을 마치고 나면 유치원생 아이들은 새로운 아이들로 거듭난다. 손에 잡히는 수치만 보자면, 공감의 뿌리 프로그램을 한 차례(9개월) 이수하면 ‘집단 따돌림’ 현상이 90%나 줄어드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캐나다 사회적 기업 ‘공감의 뿌리’이야기다. 이 교실에는 양보할 수 없는 절대 원칙이 두 가지 있다.

첫 번째 원칙은 “이곳에서는 무슨 말을 해도 괜찮다”는 것. 앞서 보았듯이 교실에서 자신의 느낌을 발표하는 아이들에게 ‘고맙다’고 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기존 교실에서 선생님이 질문하고, 학생은 대답하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학생이 모르는 것을 묻고, 선생님이 정답을 가르치는 것과도 다르다. 대견한 답변을 한 학생에게 “참 잘했어요”라고 칭찬 도장을 팍팍 찍어주면 학생도 좋고 선생님도 편할 수 있다. 하지만 ‘공감의 뿌리’ 교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칭찬에 인색해서가 아니라 그 뿌리가 ‘다른 생각’에 있는 까닭이다. 정답이 아니라 느낌을 찾아가는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어떤 ‘평가’를 할 수 있을까.

칭찬이 채점과 평가와 직결될 때 저마다의 다른 생각, 알록달록한 상상력, 자유로운 표현, 나아가 민주주의의 다양함은 움츠러들 수 있다.

두 번째 원칙은 모두에게 고른 발표 기회를 준다는 점이다. 목소리 큰 아이가 발언을 독점하지 않게 한다. “하지 말라”가 없는 이 교실에서 유일하게 ‘금지’를 훈육하는 것이 이 원칙이다. 자신이 하고픈 이야기는 허물없이 털어놓되, 다른 사람이 발언할 땐 반드시 입은 닫고 귀만 열어 경칭하는 민주주의의 기본을 훈련하는 과정인 셈이다. 교사는 교실의 분위기를 잘 살피고, 갓난아이와 학생들의 미묘한 느낌의 흐름과 심리 변화를 ‘공감’하는 것이다.

‘당싯거리다’라는 우리말이 있다. 어린아이가 누워서 팔다리를 춤추듯이 잇따라 귀엽게 움직이는 것을 뜻한다. 방긋 웃는가 싶더니 눈에 힘을 주고 팔짓 다릿짓을 하는데 여간 대견하고 귀여운 게 아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자극에 일정한 반응을 일으키는 ‘반사’와는 달리 눈앞에 보이는 보호자에 반응해 방긋 웃기도하고 손발을 움직이는 ‘신나는 반응’이다. 생후 1개월 반 즈음에 나타나는 이런 아이들의 반응에 주목해 ‘사회적 미소’라는 표현을 즐겨 쓰기도 한다. 정작 어른인 우리들에게 필요한 미소가 아닐까.

문재인대통령이 지난해 송년회에서 ‘국민 공감’을 화두로 삼았다 한다. 여러 가지 속사정은 있겠지만 그것이 일방적인 홍보가 아니라 서로 알고 다가서는 소통, 그런 공감이었으면 좋겠다. ‘공감의 뿌리’에서처럼 그렇게. 정말 올해는 국민들 얼굴 하나하나에 ‘당싯거리는’ 미소가 활짝 피어오르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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