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히 국민청원의 시대다. 시행한 지 약 500여일이 지난 청와대 국민청원은 현재까지 총 47만 여건의 청원이 이뤄지면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통로로 활발히 활용됐다. 특히 국민청원을 통해 음주운전 처벌 강화법인 ‘윤창호법’, 심신미약 감경 의무 폐지법인 ‘김성수법’, 불법촬영물 유포 처벌 강화법인 ‘성폭력처벌특례법’ 등이 제정된 바 있다.

 이렇듯 국정운영의 새로운 면모로 등장한 청와대 국민청원이 새롭게 단장하기 위한 준비에 나섰다. 국민청원의 순기능은 살리고 역기능은 보완하기 위해 이른바 ‘국민청원 시즌2’를 준비하고 있다. 현재 답변 기준인 20만 명이 적절한지, 청원 게시·동의 철회 제도 도입 등을 검토하고 있다. 또한 부정확하거나 과도한 주장으로 국민이 지지하기 어려운 청원에 대한 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정 규모 동의 후 청원이 공개되는 방식과 청원의 책임감을 높이기 위해 실명제 도입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비단 국민청원은 아니더라도 자신이 생각하는 비위 사실을 표명하면서 정국을 달구고 있는 사안도 있다. 청와대 특별감찰반으로 활동한 김태우 수사관과 기획재정부 사무관을 지낸 신재민의 폭로가 ‘국가 기밀 누설자’라거나 ‘조직 비위 제보자’라는 논란 속에 청렴사회로 가는 진통을 겪고 있다.

 언뜻 조선시대 ‘신문고(申聞鼓)’나 ‘격쟁(擊錚)’이 떠오른다. 신문고는 원래 하층민의 여론을 전달하기 위한 제도였지만 문무관원들의 청원도구로 변질되었을 뿐만 아니라, 호소내용에 제한이 많아 민의를 전하는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를 대체하고자 생겨난 제도가 격쟁이었다. 격쟁은 백성들이 억울하거나 원통한 일을 당하면 임금이 거둥하는 길목이나 특정 장소에서 징이나 꽹과리, 북 등을 치며 하소연했던 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흑산도 백성 김이수였다. 그는 정조임금의 행차를 막아서며 흑산도에서 생산되지도 않는 닥나무 공납 철회를 요구하고 이를 관철시켰다. 이는 성공한 사례였지만 제주의 역사 속에도 민폐, 세폐, 교폐의 부당함을 호소하다가 명멸해간 인물들이 있다. 

 그중에 ‘양제해 난’이라는 사건을 살펴보자. 200여 년 전인 조선 순조 13년(1813) 음력 10월 그믐날 30여 명의 백성들이 제주읍 중면 거마촌에 모여든다. 가렴주구를 견디지 못하는 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격쟁의 ‘등소장두’를 자처하고 양제해가 나선다. 이 모임의 성격을 쉽게 얘기하면 공무원들이 너무 주민들을 못살게 구니, 도지사를 찾아가 이의 시정을 요구하자고 논의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양제해는 역적으로 몰려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다. 졸지에 조선시대 최고의 대역죄로 취급당했던 ‘모변(謨變)’으로 몰린 것이다. 

 귀엽거나 깜찍하게만 봐서는 안 될 격쟁도 있다. “대통령님! 대통령님! 편지 받아주세요!" 70주년이었던 올해 4월 3일, 4.3희생자추념식장에 들어서는 문재인 대통령을 애절하게 부르며 손편지를 전달한 여고생이 있었다. 그 손편지에는 임기가 끝날 때까지 추념식에 참석해 달라, 4.3의 이름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등의 소망만이 아니라, 현장실습 학생의 희생, 세월호 문제, 강정 해군기지 문제 등 제주의 아픔을 기억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백성들의 관심사나 바라는 바를 청원하고 소통하는 통로를 마련하는 것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다만, 극히 사소한 일이거나 가짜민원, 무고(誣告)로 밝혀지는 등의 일이 종종 일어난다면 당초 취지를 무색하게 만든다. 해결의 방법으로써 정치적 ‘깜짝쇼’도 안 되거니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確證偏向 confirmation bias)의 오류를 경계해야 한다. 양제해의 등소를 모반으로 기록하고 있는 조선왕조실록처럼 부끄럽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새해 벽두에 영리병원 철회와 의료민영화 저지를 위한 꽹과리 소리가 전국으로 울려 펴질 조짐이다. 엄동설한에 제2공항 건설을 둘러싸고 도청 앞 농성천막이 북소리보다 진중하게 펄럭인다. 저 소리(청원)를 누가 귀담아 들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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