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옥살이를 한 제주4·3 생존 수형인들이 마침내 ‘70년 한(恨)’을 풀었다. 법원이 지난 17일 열린 재심 재판에서 공소기각 판결을 선고함으로써 사실상 ‘무죄(無罪)’를 인정받은 것이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제갈창 부장판사)는 17일 정기성 할아버지(97) 등 4·3수형인 18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군법회의 재심 청구사건 선고공판에서 피고인들에 대한 공소를 기각했다. ‘공소기각’이란 법원이 소송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실체적 심리를 하지 않고 소송을 종결시키는 것을 말한다.

 재판부는 공소기각 이유로 “과거 군법회의는 법률이 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므로, 이번 피고인들에 대한 공소는 절차를 위반해 무효일 때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이는 과거 군법회의가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재판부가 인정한 셈이다.

 재심 청구인들은 제주 4·3사건이 진행 중이던 1948년 가을부터 이듬해 7월 사이 당시 군·경에 의해 도내외의 수용시설에 강제로 구금됐다. 이들은 고등군법회의(군사재판)에서 주로 ‘내란죄나 국방경비법의 적에 대한 구원통신 연락·간첩죄 혐의’를 받아 대부분 유죄 판결을 받았다. 수형인 명부에는 총 2530명이 기록돼 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옥사(獄死) 및 총살당하거나 행방불명됐다. 살아남은 사람들도 이념 갈등의 시대에 ‘빨갱이’로 낙인(烙印) 찍혀 기구한 삶을 살았다. 생존 청구인들은 가까스로 살아남아 70여년 만인 지난 2017년 4월19일 재심을 청구했었다.

 사실상의 ‘무죄 판결’을 받은 이날 현우룡 할아버지(95)는 “당시 갖은 고문과 폭행으로 있지도 않은 죄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오영종 할아버지(90)도 “대구형무소에 수감된 뒤에야 자신이 징역 15년형을 받았음을 알았다”고 밝히며 눈시울을 붉혔다.

 재심 재판 모든 과정을 청구인과 함께 한 양동윤 제주4·3도민연대 대표는 “이제는 죄 없다고 말해야 한다. 4·3 생존 수형인들은 애시당초 죄가 없었고, 오늘 대한민국 법원이 죄가 없다고 했다”며 감격해했다. 이어 “늦었지만 정말 늦었지만 그래도 정의가 실현된 날이다”라고 재심 판결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이번 법원 선고는 제주4·3 피해자들에 대한 실질적 명예회복과 인권회복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매우 크다. 4·3도민연대 측은 향후 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 등을 진행할 계획으로 그 결과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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