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광저우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귤껍질 진피로 유명한 신후이로 향하는 길이다. 신후이(新會)는 광동성에 속한 인구 70만의 현급 행정구역으로, 몇 해 전 종합몰 성격의 진피촌을 설립하여 진피로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는 지역이다.

올해 진피산업 벤치마킹을 위한 진피촌 방문을 예정하고 있는데 사전 답사 겸 직접 찾아가 확인해 보았다.대도시 옆에 있었지만 신후이는 외곽의 시골 도시였다.

진피촌 또한 사진 자료를 통해 받은 깔끔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입구는 휑했고 넓은 길바닥은 누런 먼지가 쌓여 있었다. 불안감이 슬쩍 찾아왔다.마중 나온 사업부장이 진피촌 내부를 보여주며 다음 설명을 시작할 때 그런 우려는 싹 가셨다. 묵히면 효능이 좋아지는 진피의 가치에 착안한 체계적 보관관리 시스템을 자랑한단다. 이력제와 현대적인 생산 공정은 진피를 안전하게 오래 묵힐 수 있게 해준다. 각 농가는 22.5kg 한 상자(에 연간 약 5만원씩 지불하고 이 시설을 이용하여 진피를 보관한다.

해마다 15~25%씩 진피 가격이 올라가는 만큼 이를 담보로 하여 금융대출도 가능하다. 주식거래소의 시황판처럼 내부의 커다란 전광판에는 산지별, 연한별로 거래 시세가 실시간으로 공개된다. 예전에 전해 들었던 진피촌 현황만으로도 충격이었지만 직접 방문하여 체감하는 정보는 더욱 새로웠다.

진피촌장의 얘기로는 진피는 장백산 인삼과 함께 한약재로는 유일하게 고가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100년 진피는 황금을 이긴다'는 속담이 있다며 조만간 장백산 인삼보다 인지도가 높아질 것이라며 힘을 주었다.

제주진피에 대한 촌장의 질문에 아직 제주는 진피를 껍질로 취급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대답하자 의아해하면서 중국에서는 진피는 껍질이 아니라 약재라는 인식이 보편적이라는 설명이다. 더욱이 호흡 및 소화기능을 개선하는 진피의 기본적 효능을 알고 이를 생활적으로 활용한다고 한다.

이것은 진피가 들어간 요리에 대한 조리사의 설명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전 만해도 신후이 진피는 표준화가 미흡하여 제 가치를 발휘하고 있지 못했다고 한다. 이에 2013년 지방정부와 함께 한화 500억 원을 투자, 제조 시설과 공정을 현대화한 결과 신후이 지역의 진피 산업 규모는 그전보다 50배 정도 성장하였다. 처음에 지방정부에서는 투자규모가 너무 크다고 우려를 표명했었고 농가들도 왜 이런 시설이 필요한지에 대해 의구심이 많았다고 한다. 지금은 지방정부에서 오히려 지원을 약속하며 더 큰 설계를 주문하고 있단다.

농가들의 만족도도 높아져 만평 기준 1억 6천 만원 정도의 농가소득을 올리고 있고 감귤 재배지도 대폭 확대되었다. 촌장 본인도 이 정도의 성과를 예상하지 못했으며 애초 계획은 산재된 점포들을 한군데 모으는 정도로 생각했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진피의 표준화 구현, 그리고 금융과 연계하면서 지금과 같은 시장으로 성장한 것이다. 과연 진피사업이 제주에도 성공 가능할까. 제주에서는 현재 가공용 폐기물 귤껍질을 통해 500g당 3000원 정도에 대부분의 진피가 생산, 판매되고 있다. 연간 최대 1000톤 가량의 진피 생산에 총 60억 정도의 가치에 불과하다.

신후이는 연간 25만 톤의 감귤이 생산되며 전량 진피 제조에 쓰인다. 진피 생산량은 연간 1만 톤이며 신후이 지역 진피산업 규모는 17년 말 기준 9,900억원 정도이다.일각의 냉소적 시선처럼 이것은 중국에 해당하는 사안일 뿐인지도 모른다.

제주는 그러한 진피 문화가 애초부터 없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는 방안 중 하나는 중국 신후이와의 교류를 통한 인식의 전환을 도모하는 것이 아닐까.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최근 서귀포시의 한 마을 주체가 시청과 함께 진피를 소재로 마을사업화를 모색한다고 한다. 때마침 오는 2월 27일, 신후이 진피촌장이 직접 제주를 찾아 진피촌 성공사례를 발표해 주기로 했다. 이 또한 우리에게 놓칠 수 없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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